해드림 가정의학 이동주 원장

[소비자경제 칼럼] 적지 않은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의사인 나에게 하는 요청 중 하나가 ‘입 맛 나는 약’이 없냐는 것이다. 

도저히 식욕을 주체하기 어려운 평범한 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지만 세상에는 입맛이 없어서 고민인 사람이 적지 않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밥알이 모래 알 같다며 당최 식사를 하지 않으세요.”

“도통 애가 밥을 먹지 않아서 고민이에요.이렇게 안먹어서 키가 크겠어요?”

“우리 딸애는 도대체 이렇게 안 먹고도 어떻게 사나 싶은데, 뭐 좀 입맛 좀 나게 하는 약 없나요?”

실제로 이러한 이들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Megestrol(호르몬성 항암제) 이라는 성분의 약도 있기는 하나 효과도 제한적이고 암환자에게만 허용되는 급여제한 때문에 실제 진료에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식욕이 떨어진다는 증상은 암과 같은 질환을 진단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증상이기도 하지만 의학적인 관심을 떠나 이러한 증상들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면서 특이하다고 느껴진 점은 이 증상을 정작 환자 본인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괴로워 한다는 점이다.

엄밀하게 말해 식욕이 없다는 것은 배고픔의 고통보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는 고통이 더 큰 상태를 말하는 것일 테니 정작 식욕이 없어서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없을 따름이지 고통스럽다고까지 할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이들 옆에 있는 이들은 그들을 기어코 병원으로 이끌고 와야 할 만큼 고통스러운가보다. 거침없이 음식을 거둬 먹는 자식들을 볼 때 느껴지는 부모들의 근원을 알 수 없는 행복감만큼이나 잘 먹지 않는 이들로부터 전해지는 이런 고통스러운 ‘공감’은 그 파급이 큰 듯하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배고픈 사람을 외면할 수 없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굶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공감은 다른 아픔에 대한 공감보다 더욱 실제적인 것 같다. 그래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마지막 호소는 ‘단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단식은 단식하는 이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해도 그 주변으로 고통스러운 ‘공감’을 일으키고 관심을 깨우며 그가 밥도 먹지 않아가면서까지 전하고자 하는 얘기가 무엇인지 귀기울이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아빠의 금식 기간 동안 내가 느꼈던 공감이 그러했다. 그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도, 밥 한 숟가락 뜨는 일조차도 미안하게 하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시라도 밤새 그가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싶어 제일 먼저 스마트폰으로 그의 소식을 찾게 하는 그런 불편함을 경험하게 하였다.

‘단식’이라는 수단이 그저 다른 투쟁 방법과 동급으로 여겨질 수 없는 이유는 밥을 먹지 않는 이들에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사람만의 특별한 ‘공감’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 진료실에서, 그리고 지난 몇몇 사람들의 단식을 통해 내린 나름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단식이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단식은 공감하는 자들을 향하는 ‘투쟁’이고 공감은 모두에게 본능적일 것이라 믿었는데 매몰차게 외면당하는 단식도 있더라.

힘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한 것으로 남겨둔 것이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말았어야할 단식이라는 투쟁 방법을 이 땅의 권력 최상부에 있는 이가 부끄러움도 없이 가져다 쓰는 모습에 그의 부모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단식을 냉랭하게 쳐다봤다.

47일간이나 단식으로 호소하던 사람을 끝까지 외면하던 이가 갑자기 뜬금없는 단식으로 공감을 호소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조롱했다. 배고픈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적인 공감능력만큼이나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없는 이들의 단식은 ‘투쟁’이 아니라 ‘투정’이라는 것 또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가 보다.

 

<이동주 원장 약력>

마포고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공의 수료

해드림 가정의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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