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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이야기] 대안문(大安門)에서 대한문(大漢門)으로근대 역사의 빠질수 없는 진입문…국운의 창대함을 바란 비운의 명칭
▲ 지금의 대한문 사진.

[소비자경제신문 칼럼] 대한문을 통해 드나든 많은 사람들은 근대역사에서 주연으로, 조연으로 활약한 사람일 것이다.

대한제국의 수많은 대신들이 나라의 명운을 걱정하며 드나들었을 것이고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인들과 그 하수인들은 고종을 협박할 계략을 고민하며 지나갔을 것이다. 고종의 장례식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 앞에서 부복(俯伏)하여 국부의 죽음에 나라 잃은 슬픔을 보태어 울었겠는가? 기미년 삼일절에는 수많은 인파가 이 대한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해방 후에는 석조전에 있었던 남북분할통치를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회담장을 가기 위해 미국과 소련의 인사들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원래 궁궐 건축에서 정문은 남향으로 보면 된다. 몇 특수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왕은 건방(24방위(方位)의 하나로 서북쪽)에 앉아 군주남면(왕은 남쪽을 본다)이기 때문에 남쪽의문이 정문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한문은 동쪽 문이다. 원래의 정문은 정동방면, 인화문으로 남쪽에 있었다.

그런데 남쪽의 길이 협소하고 물길이 있어 정문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될 때에는 지금의 조선호텔에 있는 환구단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남쪽의 문이 불편했을 것이다. 명성황후의 장례행렬도 태평로를 지나 종로로 향했다. 역사의 중심축이 문이 동쪽으로 이동하다보니 남쪽문인 인화문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문이 동쪽으로 바뀌었다.

문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 모든 사람들이 크게 편안하라는 문이다. 그런데 1904년에 경운궁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모든 것이 깡그리 타버리는 대 참사가 벌어 졌다. 궁을 개축하면서 1906년 이름을 대한문으로 고쳤다.

▲ 이전의 대한문 위치.

이전의 대한문은 지금의 서울시청앞 광장 중간정도에 있었다. 그 때는 문이 덩그러니 도로중앙에 있어 마치 섬과 같았다. 지금의 경복궁옆 동십자각을 보면 이해할까. 1970년 1호선 지하철역공사를 하면서 약 17미터 뒤로 옮겨진 것이다. 어떻게 이동했을까. 김천식이라는 사람이 문을 끌어서 옮겼다고 한다. 지붕을 뜯고 기둥을 동아줄로 묶어서 끌고 왔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필자도 사진을 보지는 못했다.

▲ 모자를 쓴 배정자.

대안문에서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나돌고 있다. '배정자'라는 조선의 마타하리로 불리는 여자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고종과 이토 히로부미 사이에서 이중간첩을 한 여인으로 항상 모자를 쓰고 대안문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모자를 쓴 여인(배정자)의 모습을 편안할安(여자머리위에 모자)에 비유하여, 안(安)자가 보기 싫어 한(漢)으로 바꾸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1870년 김해에서 태어난 배정자는 아버지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뒤 이곳저곳을 떠돌다 기생이 됐다가 탈출해 여승이 된다. 아버지의 친구인 밀양부사 정병하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가게 된다.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도피중인 김옥균을 만나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나 사실 첩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후 배정자는 일본정부로부터 밀정교육을 받아 간첩으로 길러지게 되고 1894년 조선으로 돌아와 고종에게 접근하여 많은 정보를 빼내 한일병탄에 기여하게 된다. 1920년에는 만주, 시베리아에서 일본군의 스파이로 암약하여 많은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여 해방 후에는 친일반역자로 반민특위에 회부되기도 했다. 6.25후에는 지금의 한성대 근처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여자 이완용으로 불리는 여인이다 보니 백성들에게 얼마나 원성이 자자하였을까?

그런데 사실 대한문(大漢門)의 뜻은 위의 속설과는 많이 다르다. 한양에 도읍을 정한 이 나라의 국운이 참으로 멀리멀리 창대하게 일어서라는 뜻이라고 한다.

▲ 대한문 앞에서 조선시대 복장의 병사들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대한문 앞에는 조선시대의 복장을 한 군인들이 교대식을 하고 있다. 제대로 고증을 한 것인지? 대한문은 대한제국의 정문이기 때문에 이 앞을 지킨 군인들은 신식제복을 입은 군인이었을 것이다. 칼을 찬 것이 아니라 총을 맨 군인들 말이다.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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