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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가-①] 차미리사독립운동과 여성운동, 통일운동에 매진
차미리사. (출처=차미리사 연구소)

[소비자경제신문=양우희 기자] 지난해 영화 ‘암살’ 흥행 이후로 주인공 안옥윤의 실제 모델인 독립운동가 남자현 열사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남 열사 이외에도 우리 역사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가 많다.

이 중에서 독립운동과 여성운동, 나아가 통일운동에까지 매진한 인물 차미리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차미리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였다. 그는 이른 결혼 이후 2년 만에 남편을 잃고 조선 여성의 비참한 처지에 눈뜨게 됐다. 이후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깨우쳐 조국의 운명과 조선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중국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중에 지독한 열병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 차미리사는 아픔에 굴하지 않고 하와이에서 무작정 이주하는 한인들을 위해 직업을 알선했을 뿐 아니라 숙소를 제공했고, 기독교인으로서 전도 활동에도 매진했다. 재미 한인사회의 첫 여성 사회복지가 겸 전도부인이 된 것이다.

1908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들이 안정된 가정생활을 할 수 있게 돕기 위해 한국부인회를 창립했다. 이곳의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본국에 고아원을 설립하는 운동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등 차미리사는 어려움에 처한 동포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필요한 공부를 마친 후 “외국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고국에 돌아와서 여러 동지들과 손을 잡고 직접으로 사회의 일도 하며 청년 여성을 교육시켜서 우리의 실력을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보고 귀국길을 감행했다.

귀국 후 배화학당에서 성경과 영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불어넣던 차미리사는 “우리는 다 나가서 죽더라도 독립을 해야 한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나라 없는 설움 당해 봤지. 나 한 목숨이 죽고 나라를 찾으면 대대손손이 잘 살게 될 것이 아닌가”라며 조국독립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또한 교육을 통해 나라를 되찾겠다는 취지하에 많은 학생들을 양성하고자 했다.

1919년에 차미리사는 종교교회에 여자 야학강습소를 설치하여 여성야학을 시작했다.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여성들에게 외국어뿐 아니라 위생교육도 실시했다. 또한 조선여자교육회 산하에 조선 최초의 여성야학기관인 부인야학강습소를 설치했고, 조선 최초 전국여자순회강연단을 조직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순회강연을 실시해 여성들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이후 현재 덕성여자대학교의 전신인 근화여학교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여성교육에 뛰어들었다.

특히 차미리사의 여성 교육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가 소수의 신여성들이 아니라 조선의 평범한 주부, 여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1921년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차미리사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남녀의 관계가 한 쪽으로 기울어졌으니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이 여자교육”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그는 여자도 남자처럼 사람답게 존중 받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문맹 상태에 머물러있던 조선 여자들의 보통교육론을 주장하며 그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여성운동에 전념하던 차미리사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일제가 ‘근화여학교’의 이름이 무궁화에서 따온 것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총독부의 강한 압력을 받은 차미리사는 결국 학교 이름을 덕성으로 바꾸고 1940년에 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차미리사의 활동은 민족의 독립 이후에도 계속됐다.

해방된 이후 남과 북으로 갈라져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와 단독정부 수립이 기정사실화되자 차미리사는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국가 수립을 달성하자는 지식인 108인 서명에 동참해 적극적으로 통일조국 완성을 염원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내게는 한 가지 한이 있다. 온전한 독립을 못 보고 죽는 것이 유한이로다”라는 말을 남겼다.

‘차미리사 평전’의 저자인 한상권 교수는 책을 통해 “교육을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노력했던 차미리사 선생은 통일정부 수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교육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이기도 했던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양우희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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