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희 기자

[소비자경제=양우희 기자] 이 가을 독서의 계절이 성큼 찾아왔다. 항상 책 읽기를 즐겨해 종종 도서관을 방문한다. 그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일부 ‘얌체족’ 때문이다.

도서관의 종합자료실은 엄연히 자료실 내의 책을 열람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그럼에도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도서관을 이용해 정작 책을 읽으려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이 많다.

공공도서관에 가면 자료실 책상 위의 ‘개인 공부는 자제해 달라’는 안내가 무색하게 집에서 가져온 토익 책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로 열람 좌석이 꽉 찬다. 이들 중 몇몇은 책 한 두 권과 몇 개의 소지품으로 자리를 맡아둔 뒤 몇 시간이고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다.

개인공부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놓은 도서관이 아니면 이런 경우에 이용자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학이 되면 극성스러운 부모들은 아이를 종합 자료실로 데려와 학습지나 문제집으로 공부를 시키곤 한다. 종합 자료실에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도서관도 있지만, 이마저도 보호자와 동행할 때는 예외로 두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을 위한 자료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도 부모가 아이를 종합 자료실로 데려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내 아이를 소란스러운 어린이 자료실보다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어른들의 공간에서 공부시키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롭게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들른 어른들은 열람 좌석을 차지하고 학습지를 푸는 아이들을 보며 황당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얌체족’을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는 딱히 없다. 도서관들이 끊임없이 이용자들의 불만을 접수받고 각자 실정에 맞게 노력하고 있다지만, 사실 이것은 도서관 차원에서 완벽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얌체족들의 행동은 문제의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법적 울타리가 없는 탓도, 배려가 없는 개인의 탓도 아니다. 사회전반에 뿌리내린 과도한 결과지향주의 탓이다. 당장 눈앞에서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면 우리 사회는 결코 그것을 가치 있게 평가하지 않는다. 기나긴 과정을 견디는 것을 귀찮고 지루하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책은 뒷전이다. ‘성공하기 위한 책읽기’ 따위의 이름이 아니라면 독서가 그다지 매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당장의 취업을 위한 영어 공부가 아니면, 내 아이의 등수를 올려줄 내신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면 그 밖의 책은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어디 책뿐인가? 과학 연구 역시 돈이 되지 않는 기초 분야는 찬밥 신세이다. 기초 과학을 홀대하고 장기투자에 인색했던 정부는 십수년간 부르짖은 노벨상 소식이 없자 그제서야 기초과학분야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마저도 노벨상을 타기 위함이다.

단기간의 성과를 목표로 설정하고 고군분투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배의 고통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두운 면도 분명 있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는 온갖 부정부패를 낳았다. 사람들은 삶의 여유를 잃었다.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 달성’을 외치며 으쌰으쌰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그 방식은 20세기에나 먹혔다. 숫자를 포함한,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21세기는 달라야한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과정 자체를 즐겨보자. 과정을 즐기다보면 결과는 따라온다.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즐거운 과정 끝에 받아든 결과라면 아마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양우희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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