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루 박재형 변호사

[소비자경제 칼럼] 미국의 유명 법정영화들을 보면, 변호사들이 각자의 의뢰인을 대변하여 배심원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사건을 설명하며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볼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이 법정영화의 핵심 장면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동일한 배심재판 제도는 없지만, 2008년부터 미국의 배심재판과 유사한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것이 도입되어 일부 형사사건의 경우 배심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최근 있었던 소위 농약사이다 할머니 사건의 1심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는데, 해당 사건의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죄 및 무기징역의 의견을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배심재판은 2007년 제정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하 “국참법”)에 의해 인정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배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의 유, 무죄 여부에 관한 평결 및 양형에 관한 평결이 재판부를 기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배심원들이 무죄 의견을 내도 재판부는 이를 따르지 않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고, 이러한 점이 미국의 배심제와 크게 다른 점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국참법상 단독판사 관할 사건, 즉 비교적 경미한 사건의 경우 배심재판 대상이 아니고, 합의부 사건인 경우에도, 피고인이 배심재판을 원하지 않거나, 피고인이 배심재판을 원해도 재판부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배심재판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러한 점도 미국의 제도와 다릅니다.

배심재판과 판사가 재판하는 재판 중 어느 재판이 더 좋은 제도인지에 관해 견해가 갈릴 수 있지만, 최소한 형사재판의 경우 배심재판이 판사들만에 의한 재판보다 더 좋은 제도인 것 같습니다.

우선 일반인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여 판단을 하는 것이 국민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 충실하다고 보입니다.

한편 재판 결과가 얼마나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 보면, 직접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유, 무죄의 진실을 알고 있기에, 판사에 의한 재판이나 배심원에 의한 재판 여부가 재판 결과에 수긍하는 정도를 좌우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판의 결과에 대하여, 당사자 뿐만 아니라 다른 제3자도 높은 관심을 가지는 사건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관한 선거법위반 재판,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 재판 같은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의 경우, 다수의 국민들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일부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인 입김 또는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판이 배심재판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재판 결과에 수긍하는 국민들이 훨씬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배심재판을 하면 재판 진행이 헌법과 법률이 추구하는 구술심리주의에 더 충실하게 되고, 진실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즉, 기존의 재판방식에 의하면, 경찰과 검사가 밀실에서 작성한 조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는데, 배심재판을 할 경우 조서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증인들 및 사건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직접 진술하는 생생한 증언에 기초하여 판단을 하게 되므로, 구술심리주의에 충실하고,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물론 과도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 등 배심재판의 단점도 지적되고 있지만, 위에 열거한 장점들을 고려하면, 장점이 훨씬 많은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법을 개정하더라도 배심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즉 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이 아닌 배심원이 판단을 하는 재판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재 제도, 즉 판사가 배심원의 결정에 기속되지 않고 참고만 하도록 되어있는 경우에도, 판사가 배심원의 결정과 다른 판결을 내리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판사는 배심원의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명확한 확신이 들지 않는 한 배심원의 견해와 다른 판결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실제 통계를 살펴 보더라도,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판결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소위 농약사이다 할머니 사건의 경우에도, 재판부는 배심원의 견해를 그대로 따라 판결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법률상으로는 판사가 배심원의 견해에 기속되지 않더라도, 판사가 배심원과 동일한 판단을 하는 것이 사실상 관행으로 굳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미국의 경우, 판단권한이 배심원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배척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배심원이 판사의 설명(instruction)을 따르지 않았거나, 평결 자체가 일관성이 없는 경우(internally inconsistent), 판사는 자신의 재량으로 배심원에게 다시 판단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평결을 무시하고 아예 다른 배심원들 앞에서 새롭게 재판을 하도록 명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원칙적으로 배심원에게 판단을 하게 하는 미국의 배심제도의 경우에도,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바꿀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판사들이 원칙적으로 배심원의 견해를 따르는 관행이 성립된다면, 미국과 우리나라의 배심제는 실제 운용상 별 차이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록 우리나라 헌법상 배심제를 운영하는 것이 표면상 헌법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견해를 수용하는 관행을 통해 미국과 거의 유사한 배심제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헌법 규정을 형식적으로 해석하여 배심제 운용에 소극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현재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배심제의 적용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 보다 부합하고, 국민의 재판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입니다.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박재형 변호사 약력>

양정고 졸업

연세대 법학과 졸업(법학사) 

UCLA School of law 졸업(법학석사) 

42회 사법시험 합격 

32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고등검찰청, 인천지방검찰청 공익법무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현)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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