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안 아파본 사람은 몰라요”

▲ 위안부 소녀상과 집회 참석을 위해 모여든 시민들 (출처=포커스뉴스)

[소비자경제=이창환 기자] 일본 정부는 3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인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약108억원)을 출연, 송금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관계자는 “일본은 이날 재단 계좌로 10억엔을 송금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10억엔 출연을 확정한지 1주일 만에 송금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일본의 송금 계획은 양국간 외교채널을 통해서도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재단에 예산 10억엔을 출연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일본의 이행조치는 완료 단계로 접어들었다.

▲ 윤병세 외교부장관(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015년 12월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는 모습 (출처=포커스뉴스)

양국 정부는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하면 적어도 한일 정부 사이에서는 '외교적 현안'으로서의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수순으로 진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화해·치유재단은 10억엔으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46명)에 대해서는 1억원, 사망자(199명)에 대해서는 유족들에게 2천만원을 분할지급 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생존자는 40명이지만 지난해 한일간 합의 타결시 생존했다 이후에 사망한 6명도 생존자와 동일한 1억원이 지급된다.

지원대상은 245명으로, 정부에 공식 등록된 238명과 대일항쟁위원회에서 피해자로 인정한 7명(사망자)이 포함되며 10억엔의 80%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되고, 나머지 20%는 재단이 피해자를 위한 추모 등의 상징적인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전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주도하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2명을 원고로 정부 상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피해자 할머니들은 정부가 지난해 12월28일 일본과 맺은 위안부 한일 합의가 201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어긋나는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끼쳤으므로 손해배상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시 헌재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정부가 해야 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것이다.

원고인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등 표현까지 써가며 지난해 말 일본과 합의한 것이 헌재가 지적한 '위헌적인 부작위'의 영속화를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은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결정이라는 의미다.

앞서 일본 측의 10억엔 지급 방침에 대해 정대협 할머니들의 여전한 반대에 대해서 외교부는 “생존 피해자 40명 가운데 개별적으로 거주하는 피해자 중 적지 않은 수가 합의에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고 재단을 통한 조속한 사업 시행을 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991년, 고(故)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된 지 25년 만의 일이지만 소속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정부의 결정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

▲ 3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오른쪽 네 번째) 할머니와 김복동(오른쪽 다섯 번째) 할머니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현금지급 방침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지난 결정 이후,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90)할머니는 "해방이 됐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다"며 "독재 때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만 앓다가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정부의 이런 결정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또 다른 피해자인 길원옥(89)할머니와 한 목소리로 "여러분 자식, 동생, 친척이 끌려가서 돌아왔다고 그 위로금 몇 푼 받고 용서가 되겠습니까. '돈 준다는데 그냥 받지'라고 하는 사람은 그 고통을 안 받아본 사람이에요. 아픈 사람만 그 마음 알지 안 아파본 사람은 몰라요."라고 말했다.

또 일본 일각에서 나오는 소녀상 이전 목소리에 대해서도 할머니들은 "지금이 식민지 시대도 아닌데 소녀상이 있는 곳이 자기네 땅도 아니고 우리 땅에 세운 소녀상을 일본이 치우라 할 게 뭐 있나"라며 "소녀상 철거 대가로 주는 돈은 백억원이 아니라 천억원이라도 안 받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결정과 반대의 목소리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지 향후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창환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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