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궐에서 해설하고 있는 한선생.

[소비자경제 칼럼] 요즘 국보 1호에 대한 논란이 심각하다. 사실 내가 어릴적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배우는 것이 국보 1호는 남대문, 보물 1호는 동대문이라는 거였다. 국보 1호를 남대문으로 하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고 당연시했던 남대문이다, 아니 이제부터는 바뀐 이름인 숭례문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숭례문의 국보 1호 자리가 위태로운 것이다. 사실 국보를 1호로 한다는 것이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부청에서 제일 가까운 사적지를 일련번호로 매기면서 숭례문이 朝鮮古跡1호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1호가 갖고 있는 무게는 숭례문의 큰 지붕의 무게 만큼이나 우리에게 각별하다. 국보 1호가 숭례문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훈민정음 해례본이 되어야하는가 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자체가 어쩌면 숭례문의 위상을 더 견고히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한선생과 하는 한양이야기, 국보 1호의 위용을 뽐내는 숭례문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가 보도록 하자

숭례문은 한양도성,총 길이 18.6KM로 둘러 쌓인 성곽중 가장 남쪽에 설치된 문이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1393년부터 지어졌다는 한양도성의 제1 관문이다.

▲ 숭례문 현판.

조선의 중심 漢陽,그 한양의 가장 중심되는 대문이 숭례문이다. 시골에서 도보로 아니면 말을 타고 한양에 올라 올 때 저 멀리서 큰 위용을 자랑하는 숭례문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아니 먼저 말에서 내려 절부터 하였을 것이다.

저 문을 통과해서 한양 땅을 밟으면 임금님이 사는 궁궐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문화와 물산이 집결된 곳이니 조선에서 한양을 구경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인왕산과 안산을 한양의 주산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경복궁의 뒷산인 白岳山을 主山으로 정하고 4개의 內四山(백악, 인왕, 낙산, 목멱산)과 4개의 외사산(삼각산, 관악산, 덕양산, 용마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사산 4개에 빙 둘러서 성곽을 쌓았으니 이름하여 漢陽都城이다. 서울시에서는 이 한양도성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한다고 준비중이다. 그 내사산의 남쪽문이 숭례문이다. 사실 유교의 5가지 덕목인 仁,義,禮,智,信에 따라 한 글자씩 따와서 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崇禮門(예), 興仁之門(인), 敦義門(의), 肅靖門(靖,지혜지자를 써야하나 변화를 주기위해 비슷한 글자인 꾀정자를 씀), 그러면 하나 남는 글자 信은 한양도성의 중심인 普信閣에 썻다. 현재 남아우리가 볼 수 있는 문은 숭례문과 흥인지문이고, 숙정문은 경복궁의 주산인 백악산 정상부에 복원되어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문하나. 왜 숭례문은 글씨의 편액이 세로로 되었는가다. 흥인지문을 비롯해서 모든 문의 편액이 가로쓰기가 아닌가? 이유는 간단하다. 외사산의 남쪽산인 관악산은 火山이다. 그 화기를 누르기 위해서 횃불 모양으로 글씨를 배열하다보니 세로로 쓰인 것이다.

자, 관악산의 화기가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다가 한강에서 1차 관문을 지나 불길을 누그러트리고 계속 직진한다. 숭례문에 도착,아니 숭례문 옆에는 南池라하여 작은 못이 있었다. 남지의 물을 만나 화기가 누그러지고 두 번째 관문과 세 번째 관문인 崇禮門 편액을 만나 다시 불기운이 소멸된다. 그래도 남아있는 화기는 현재의 일직선상인 태평로로 가지 못한다.왜냐하면 조선시대에는 태평로가 없었다.

태평로는 1897년 명성황후의 국장 때에 비로소 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남대문로로 가서 보신각을 통해 경복궁에 이르렀다. 그 휘어진 길을 통과해 경복궁에 닿는다 해도 이제 경복궁의 獬豸상이 기다린다.

우리의 궁궐은 목조인 까닭에 여러번의 화마를 누그러트리는 풍수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그러면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이 숭례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는가? 보신각에서 저녁에 울리는 28번의 종소리(인정)에 맞춰 문을 닫았고 33번 울리는 罷漏에 맞추어 문을 열었다.

저녁에 울리는 인정소리, 28번의 종소리는 하늘의 별이 잠드는 곳이라는 동양의 전통적 개념인 수(宿)의 28개 별자리에 맞추어 문을 닫고 33개의 하늘이 열린다는 불교의 33天 사상에 따른 것이다. 보신각에서 왜 해마다 1월 1일에 33번의 종을 치는 줄 아는가? 하루를 여는 33번의 종소리에 따라 한해를 열며 하늘의 천지신명에게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숭례문에 대해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데 오늘 첫 번째 시간이니 33번의 종을 치며 첫 번째 칼럼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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