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등 집단시설 종사자 결핵검사 의무화…질본 “예산 확보는 아직”

▲ 최근 대형병원 의료진들의 결핵 감염이 계속되자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최근 대학병원에서 의료인 결핵 감염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잠복 단계부터 결핵을 뿌리 뽑겠다며 칼을 빼 들었지만 아직까지 예산 확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고대안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A(23·여)씨가 결핵의심자로 판정됨에 따라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직원 중 2명이 잠복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잠복결핵은 특성상 전염성을 갖지 않지만 앞서 이대목동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서 간호사가 결핵에 연이어 감염된 터라 의료인 결핵 감염관리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사례가 드러난 3곳의 감염자가 모두 소아환자 담당 간호사라는 점이다. 어린이들은 성인보다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히나 감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료인의 잇따른 결핵 감염에는 우리나라의 결핵 발병률 자체가 높다는 점이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 ‘결핵 후진국’ 오명 못 벗어나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해 회원국 중 줄곧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5년 결핵 환자 신고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결핵 신환자 수는 63.2명에 달한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결핵 발생률 2위인 포르투갈(25명)과 3위 폴란드(21명)보다 훨씬 더 많은 수준이다.

결핵은 영양 상태가 불량할 경우 걸리기 쉬운 후진국병이지만 우리나라는 결핵 환자 수 감소가 급속한 경제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결핵은 의료 인프라가 취약했던 한국전쟁 때 유행하기 시작해 1960~1970년까지 환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결핵은 만성감염병이기 때문에 결핵균에 감염되더라도 질병이 발현되지 않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결핵이 유행하던 시기 결핵균에 감염됐으나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40대 이상의 25%가 잠복 감염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의 고령화와 함께 결핵 환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보건당국은 우리나라 국민의 3분의 1이 ‘잠복결핵’ 환자로 추정하고 있다.

잠복결핵은 우리 몸속에 결핵균이 들어오더라도 활동성을 띄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활동성이 없는 만큼 타인에게 전파되지는 않지만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10명 중 1명 정도에서 발병하기도 한다.

김윤정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결핵 환자와 같이 지내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결핵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며 “결핵균이 억제돼 있다가 면역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다시 증식해 활동성 결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결핵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환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결핵 환자 대부분은 결핵약을 6개월에서 9개월 간 꾸준히 복용하면 낫는다.

문제는 환자 스스로 약을 매일 복용하지 않고 증상이 좋아졌다고 치료를 중단하면 몸속에 남은 결핵균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박성훈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결핵은 무엇보다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치료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료진과 환자 간의 소통으로 장기간의 치료를 견뎌야만 완치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 보건당국에서 발간한 결핵예방 관련 자료들. (출처=소비자경제DB)

◆ 결핵 퇴치에 칼 빼든 정부…예산은 0원?

종합병원 종사자조차 결핵균에 감염되자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병을 고치러 갔다가 오히려 또 다른 병 하나를 얻어오는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병원은 결핵뿐만 아니라 모든 전염성 질환에 취약한 공간이기 때문에 의료인의 잠복결핵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게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결핵예방법 시행규칙’을 통해 의료기관과 학교,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등의 종사자에게 결핵과 더불어 잠복 결핵 검진 실시 등의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결핵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결핵 위험군에서 잠복결핵 감염자를 찾아내 결핵이 발병하기 전에 미리 치료하겠다는 의도다. 보건당국은 잠복결핵감염을 치료할 경우 결핵발생을 90%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행규칙이 공포·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은 관련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4일 시행된 법령에 따르면 의료기관, 산후조리원 종사자와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교직원 등에 연 1회 이상 결핵검진을 실시하고, 면역학적 검사를 통해 잠복결핵 검진을 받도록 했다. 법에는 결핵환자나 결핵 의심 환자, 잠복결핵감염자에 대해 국가가 진단, 진료, 약제비 등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검진비는 1인당 4만~5만원으로 국비로 절반을 지원하게 된다. 의료기관 종사자 70만 명(84억원),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중·고교 등에 근무자 75만 명(120억원) 등에 총 204억원의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기획재정부와 2017년도 국민건강증진기금 운영계획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다.

정부는 집단시설 종사자 145만 명뿐 아니라 결핵 환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하는 연령인 고등학교 1학년 55만 명의 잠복결핵을 일제히 검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 모두에 검진을 시행하려면 결핵 예산을 올해의 곱절에 가까운 750억 원대로 늘려야 하지만, 재정 부담으로 인해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기 전까지 기존 직원들의 잠복결핵 검진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질병관리본부 한 관계자는 “새롭게 임용되는 의료인들은 의무적으로 결핵 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기존 종사자들의 경우 예산이 확보된 이후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늦어도 내년까지는 예산을 확보해 곧바로 시행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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