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장애인 대중교통 시설 보편화…"국내 도입 시급"

▲ 장애인들은 교통시설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시설 확충이나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소비자경제=공동취재팀] 서울의 대중교통은 세계적으로도 편리하기로 유명하다. 서울처럼 차량이 많아 복잡한 지역에서는 지하철과 버스의 편리함이 더욱 와 닿는다. 그러나 이런 대중교통이 모두에게 편리한 것 같지는 않다. 아직까지도 지하철과 버스에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포함한 노인, 어린 아이, 임산부 등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울은 세계에서 대중교통이 잘 운영되는 곳 중 하나로 분류되지만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에게는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대중교통 시설이 일반 성인에게 맞춰져 있어 몸이 불편한 이용객들의 희생이 불가피한 것이다.

또한 서울은 그나마 엘리베이터, 리프트, 경사로 등이 부족하더라도 설치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지만 지방은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 배려 부족한 한국 대중교통

▲ 아직도 국내의 일부 지하철에는 엘레베이터가 도입되지 않았거나 실용성이 떨어지는 리프트만 작동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지하철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위한 조사와 개선이 이뤄진 것은 올해 초가 돼서야 시작됐다. 해당 계획이 완성돼 서울 1~4호선의 모든 역에 장애인 편의 시설이 구축되려면 앞으로도 2022년까지 6년이나 더 걸릴 예정이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다고 해도 동선이나 거리, 개수 등 면에서 아직 많이 불편하다고 장애인들은 호소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거리가 멀고, 구간별로 계단만 있는 경우도 있어 다니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는 여대생 김모씨(22)는 “휠체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걷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학교에 갈 때 지하철역에 계단밖에 없는 구간이 있어 항상 올라가기 버겁다. 버스에서는 노약자 석에 앉아 있으면 눈치를 주는 시선 때문에 앉아 있기 불편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의 약 120개 역(1~4호선) 중 117개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경사로는 233개소에 돼 있다.

인천지하철 2호선은 지난달 30일 새로 개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인천장차연)는 지하철이 개통되던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지하철 역사 전수 조사를 하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인천장차연은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27개 역사의 엘리베이터, 비상용 대피로, 장애인 화장실, 비상통화장치 등 170개 편의시설이 장애인에게 불편하게 돼 있었다고 했다.

또한 승차장에서 열차와 간격이 모든 역사에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기준인 5cm를 넘고 있었다. 10cm가 넘는 곳은 4곳이나 됐다. 재난 시 승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설계된 선로 대피로는 27개 역사 모두 폭이 30cm밖에 되지 않아 휠체어를 탄 승객은 이용할 수 없었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지자체는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상버스는 출퇴근시간에 기사들이 장애인 승객의 탑승을 거부하거나 경사로와 정류장 턱이 맞지 않는 등 문제가 있다. 또한 지역별로 저상버스의 승차간격이 들쑥날쑥하고 도입률이 낮기도 하다.

현재 저상버스 도입률은 서울이 35.5%, 경기도는 17.7%고 지방은 더욱 낮다. 전국 평균은 21.9%다.

국토부 교통안전복지과 관계자는 “저상버스 도입률이 낮은 것은 예산 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래 저상버스 예산이 국비와 지방비 반반씩 조달되는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지방비 확보가 안 됐다. 지금은 지방비가 잘 마련되고 있어 도입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장애인 시설 부족한 대중교통, 사고 나면 더 위험해

장애인 시설이 부족하면 사고가 발생했을 시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들은 일반인보다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3일 오전 5시 55분께 인천지하철 2호선은 인천시청역에서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큰 피해는 없었지만 출근시간에 약 8분 간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등 승객들이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인천지하철은 이날 사고뿐만 아니라 개통 첫날부터 통신장애, 출입문 이상, 출력 이상, 단전 등 각종 장애로 여섯 차례나 운행을 중단해야 했다. 현재도 끊임없이 해당 지하철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새로 개통한 인천지하철 2호선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통된 27개 역 모두가 승차장 간격이 기준(5cm)을 초과하고 있었고 10츠fmf 넘는 곳도 심지어 4곳이나 있었다. 더욱이 재난 시 승차장을 빠져나오도록 설계된 대피로는 폭이 30cm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큰 사고는 없었으나 만일 문제가 계속돼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면 장애인, 노인, 어이 등 교통약자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2014년 감사원의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사를 대상으로 철도시설 안전 실태에 대해 감사한 결과 압구정, 강남구청, 공덕, 정부과천정사역 등 수도권 45개 지하철역의 비상 대피로가 규정에 맞지 않게 설비돼 있기도 했다.

시설뿐만 아니라 재난 상황 대비책도 부족하다. 화재 등 재난상황에 대비한 훈련에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이 참여해본 경험이 많지 않고, 재난 상황 발생시 대피로를 안내하는 음성유도가 전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장애인이 참여한 재난 대비 합동훈련은 지난해 2월 처음 실시됐다. 이전에는 전혀 재난 상황 준비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피로로 가는 길에 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통로 유도등이 마련돼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충분한 훈련 없이 이동하기는 부족하다. 서울메트로의 비상대응메뉴얼에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있을 경우 역무원이 안전지대에 대피시킨다’고 돼 있는 것이 매뉴얼의 전부다.

장애인 협회에서는 꾸준히 정부에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국 장애인 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아직까지도 장애인은 물론 교통약자를 위한 교통 이동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계속되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도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비판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장애인 시설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꾸준히 개선 중이다. 또 장애인들이 불편을 겪으면 민원제기를 하거나 역에 도착해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드린다. 아직 엘리베이터나 관련 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대부분 구조적 어려움이 많은데 앞으로 공사를 해서라도 시설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 배려 넘치는 해외 대중교통

▲ 해외의 많은 국가들은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장애인들의 교통 이동권 보장을 해주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서울은 곳곳에 지하철이 잘 연결돼 있고 버스 노선이 편리하게 배치돼 있어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전문가 및 사회단체는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교통 강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의 불편한 장애인 대중교통 시설과는 달리 해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모두 편리하게 교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네덜란드는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불만이 생기면 즉시 정부 웹사이트를 통해 민원 신고가 가능하다. 또 대중교통 관련 시설 공무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장애인들을 돕도록 권장하고 있다.

교통시설도 우수하다. 모든 버스가 바닥이 낮아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편리하게 승하차를 할 수 있고 소리와 화면을 통해 역을 안내해준다. 지하철도 모든 역에 장애인 리픝, 오르막길이 설치돼있으며 승강장과 지하철의 높이가 같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 제정된 미국장애인법을 통해 장애인들이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이에 저상버스의 보급이 의무화돼있으며, 지하철에서는 휠체어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는 비상출구가 있다.

한국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한참 뒤에 있는 태국도 대중교통 내 장애인 편의시설에서는 한국보다 우세했다.

방콕은 지하철 전동차 3칸에 하나씩 장애인을 위한 별도 공간을 갖추고 있다. 또한 장애인 시설을 갖춘 전용칸의 입구는 엘리베이터와의 이동거리가 가장 짧게 돼 있다. 전동차 연결 통로도 국내 지하철보다 넓다. 국내 지하철의 전동차 연결통로는 9호선과 같이 개통된 지 오래되지 않은 것만 넓게 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호주, 영국, 미국의 경우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고속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관련 규정을 의무화하고, 단계적 목표를 설정해 최종적으로 모든 고속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100% 설치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에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는 고속‧시외버스가 단 한 대도 없는 실정으로, 국가가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을 위해 관련 법령에 규정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연·강연주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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