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모두 '나몰라라'…"소비자 피해 구제방안 마련돼야"

▲ 문제가 된 제조사 ‘3M’에서는 OIT를 함유한 항균 필터를 국내에만 유통시켰다. 국내에는 관련 규제가 부족해 미온적 대처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출처=픽사베이)

[소비자경제=공동취재팀]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대국민 피해에 이어 차량용 에어컨 및 공기청정기에도 유사 물질이 발견돼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업체의 대응은 옥시 사태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당 부처인 환경부는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업체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사건이 유독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어 제도적 차원의 문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피해자 조사 및 대책 마련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차량용 에어컨·공기청정기도 독성물질, 제2의 옥시 사태 우려

▲ 이번 사태를 두고 환경 전문가들은 '제 2의 옥시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공포가 채 가시기 전에 새로운 유해 물질 성분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필터에서 독성 물질 옥틸이소티아졸론(OIT)가 검출된 것이다. OIT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서 나온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비슷한 물질로 2014년 환경부가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이 유독물질이 들어간 항균 필터가 사용된 가정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는 무려 84개 모델이나 됐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된 가정용 에어컨 33개 모델과 공기청정기 51개 모델의 항균 필터가 OIT를 함유하고 있었다.

이들 항균 필터에서 검출된 OIT는 곰팡이, 미세먼지, 박테리아 등을 죽이는 향균제다. 주로 쿨링 시스템에 사용돼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등에 쓰이는데 이 성분은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농도가 높으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이 항균 필터에 들어 있는 OIT는 초기에 집중적으로 분출돼 최근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교체했다면 해당 물질에 노출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필터들은 사용한지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70~80% 이상 살균 성분이 나온다. 이 독성물질은 몸에 축적될 가능성도 있다.

신종욱 중앙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OIT는 농도가 높으면 옥시사태처럼 폐렴, 폐관절 등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기관지, 천식 등 기도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특히 위험하고 이들은 낮은 농도에도 과민한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사람에게 항생제를 넣을 때는 용량이 정해져 있다. 기업들은 이 성분의 요량을 낮춰서 제대로 만들어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성분을 없애는 것”이라고 전했다.

OIT가 들어간 항균 필터를 만든 제조사는 ‘3M’이다. 그런데 3M은 다국적기업임에도 불구하고 OIT를 함유한 항균 필터를 국내에서만 유통시켰다. 현재까지는 왜 국내에서만 해당 독성물질이 유통됐는지 알려진 바 없으나 국내에 이런 문제에 대한 규제가 없어 미온적 대처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옥시뿐만 아니라 폴크스바겐, 이케아 등도 국내와 해외에서 다른 영업 태도를 보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케아는 안전사고가 계속된 서랍장에 대해 다른 국가에서는 대대적인 리콜을 실시했으나 한국에서는 하지 않았다. 또한 폴크스바겐은 지난해부터 디젤게이트 조작 사태가 발생해 아직까지도 수습중이다.

현재 3M은 항균 필터를 국내 공기청정기 제조사 삼성, LG, 코웨이, 위니아, 청호, 프렉코 7개 사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3년 동안 해당 항균 필터는 118만 개 이상 공급됐다. 특히 같은 기간 동안 현대모비스 등 6개사를 통해 차량용 에어컨 항균 필터로 215만126개 판매됐다.

◆ 정부·업체, 호흡기 질병 유발 독성물질 OIT 발견에 책임 넘기기 급급

▲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서 독성 물질 옥틸이소티아졸론(OIT)가 검출됐다. (출처=환경부)

옥시에 이어 비슷한 사건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와 업체는 서로 잘못 숨기기에 급하다.

지난 20일 환경부는 공기청정기나 차량용 에어컨에서 쓰이는 항균 필터에서 OIT가 얼마나 방출되는지 실험한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를 통해 환경부는 “(해당 제품의) 위해가 우려된다”며 제품 회수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 발표에 대해 환경부는 늑장 대처라는 비난을 받았다. 환경부가 OIT를 유해물질로 분류한 것은 2년 전인 2014년이다. 해당 물질이 많이 사용되는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당시에 실험해 발표했어야 됐다는 것이다. 최근 옥시 사태에서 발견된 MIT와 CMIT는 각각 2012년, 2013년에 유해물질로 지정됐다.

폴크스바겐 사태의 문제 차량에 대해서도 2014년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충족한다며 인증을 냈지만 뒤늦게 조작이 드러나 소비자의 피해가 커지기도 했다.

더욱이 환경부는 해당 물질의 위해성 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반인이 확인하기 힘든 lfxj 모델명을 공개해 비난받기도 했다. 이후 22일 환경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OIT 함유 향균 필터가 사용된 기기명’을 재 공지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해물질이 폐를 비롯한 신체에 위험하다는 사실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모든 유해물질은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번 일만 보고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환경부는 유해물질을 지정하는 역할만 하며 그 물질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은 업체의 몫”이라고 변명했다.

▲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이 이번 환경부 검사 결과, OIT 물질이 검출됐다. (출처=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유해물질 OIT가 검출된 항균 필터는 대부분 3M에서 공급한 제품으로 한국3M이 자체 개발해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대 후반 국내에서 항균제품이 인기를 끌자 한국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3M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해당 제품은 국내에서만 판매됐을 뿐 다른 국가에서는 제조도, 판매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3M은 2014년 OIT가 유해물질로 지정된 당시 3M 항균 필터에서는 해당 성분이 전혀 방출되지 않거나 나와도 극소량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환경부 발표는 한국 3M의 주장과 전혀 달랐다. 방출율이 가장 낮았던 LG의 공기청정기 FLA-V079SE 모델은 OIT가 25%나 나타났고 현대모비스 Mobis Besfits 필터에서는 무려 76%나 방출됐다.

한국 3M은 뒤늦게 항균 필터의 위해성이 밝혀지자 그제서야 “소비자와 항균 필터를 공급받은 고객사에 불편과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또한 한국 3M은 “국제기관에서 인증 받은 본사 자체 실험에서는 공기중 검출되는 OIT의 양이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국내 소비자와 고객사의 우려를 고려해 생산과 공급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공기청정기 제조사이자 3M에 항균 필터를 공급받은 업체들은 일제히 “몰랐다”며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현재 삼성, LG, 코웨이 등 유해성이 드러난 모델의 업체는 해당 제품의 필터를 무상으로 교체해주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항균 필터의 유해물질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공기청정기의 경우 초기개발 사양에는 해당 물질이 들어가지 않았다. 최근 AS 자재로 들어왔던 것에 해당 물질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우리는 환경부 발표 전부터 해당 유해물질 제품에 대한 교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처음 해당 물질에 대해서 방송 보도를 통해 이슈화됐고 당시 우리 제품에는 검출이 안됐다. 이후 3M 확인 결과 극히 일부 제품에서 극소량이 들어가 있었다”고 전했다.

◆ 소극적인 정부 대응이 제2, 제3 옥시 사태 만들 수도…

▲ 소극적인 기업과 정부의 대처로 또 다른 옥시 사태와 같은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출처=MBC 뉴스 캡처)

환경부는 26일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의 항균 필터에서 검출된 OIT의 독성이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 있던 MIT, CMIT보다 낮다고 밝혔다. 항균 필터의 위해성 실험 결과를 내놓고 6일 만의 OIT 물질에 대한 새로운 정보다.

이어서 환경부는 필터 교체 전까지 차량 에어컨을 이용할 때는 자주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바로 앞에서 얼굴을 근접해 작동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있지만 옥시에 이은 살균제 공포에 에어컨도 제대로 켜지 못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파주시 문산읍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씨는 “4살과 2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애들 데리고 외출하려면 반드시 차를 타야 하는데 요새는 더워도 에어컨을 틀어야 하나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매연도 많은데 창문을 열 수도 없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번 항균 필터 사건은 지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발생했다. 비슷한 류의 유해성분 파문이 연달아 발생한 것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 물질도 2012년과 2013년 환경부에 의해 유해물질로 분류됐으나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것은 올해 들어서다. 이 물질로 지난달 기준 701명이 죽고 3642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국회는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습기살균제 특위)를 지정하고 25일부터 환경부, 고용노동부를 시작으로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단체 및 환경단체는 공산품, 생활화학제품 등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건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더욱이 국내에 이런 안전 관리에 대한 규제가 적절하지 않으니 국내에서만 유독 이런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서만 유해하거나 하자가 있는 제품을 판매하다 적발된 사건이 4개나 된다.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준 옥시 가습기 살균제, 폴크스바겐 사태, 이케아 서랍장 리콜, 3M 항균 필터가 그것들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2011년 이미 질병관리본부에서 해당 제품에 대한 유해성이 밝혀졌으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에 이르게 됐다.

이에 대해 관련 단체들은 이번 OIT 항균 필터 또한 환경부가 제대로 된 대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업체들도 책임 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지적한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기업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결국 국민들만 피해보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이번 사건으로 피해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기업과 정부에 정보를 제대로 제공할 것을 요청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소비자가 겪은 천식, 피부병 등 질병이 유해물질 사태와 관련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신고센터와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연․강연주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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