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미국만 되고 한국은 안 돼”…뿔난 소비자들 비난 봇물

▲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사태 관련, 미국 소비자에게 보상하겠다고 나섰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서울 강남일대 폭스바겐 전시장. (출처=포커스뉴스)

[소비자경제=정명섭 기자]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사태 관련, 미국 소비자에게 보상하겠다고 나섰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폭스바겐 차량 소유주들의 비판이 거센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 소비자들의 현명한 소비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폭스바겐은 미국의 피해고객과 환경오염에 대한 배상액으로 153억 달러(한화로 약 17조9000억원 규모)을 지급하는데 합의했다. 문제의 폭스바겐 차량 구매자 47만5000명은 591만원에서 1100만원 가량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폭스바겐 측이 미국에는 거액의 보상안에 합의했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잠잠한 모습을 보여 한국 고객을 차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폭스바겐의 공식 입장은 “한국과 유럽에서는 법적으로 배출가스 소프트웨어 조작에 해당하지 않고 미국에서만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배출가스 허용 기준이 한국·유럽에 비해 훨씬 엄격하고 차량 구조도 다르고, 이외의 국가에서 법률·규정에 적용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 해명의 주된 내용이다. 이에 따라 리콜 외에는 별도의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 소비자들 입장에선 차별을 받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농락’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배출가스를 고의로 조작한 불법 차량을 판매했다는 점에서 국가를 막론하고 사태의 본질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폭스바겐이 한국 시장을 외면하고 있는데 대해 타 국가에 비해 작은 내수 시장을 지목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 폭스바겐의 국내 판매량은 1만629대로,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판매량(65만5000대)의 1.6%에 불과하다. 또한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가 내수를 장악하고 있어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도 녹록치 않다. 폭스바겐 입장에선 한국 시장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다.

▲ 폭스바겐 티구안. 배출가스 조작사건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올해 20만대 판매 고지를 넘어섰다. (출처=폭스바겐)

폭스바겐그룹 전체로 보면 세계 자동차 판매 규모 1000만대 중 한국 시장은 0.7%에 불과하다. 불매운동을 벌이더라도 독일 본사가 받을 영향은 작은 수준이고, 판매 시장은 타 국가로 넘기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보유대수도 가파르게 늘어나는데, 한국은 인구가 적고 내수가 포화돼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도 한계가 보이는 시장이라는 점도 폭스바겐 입장에서 외면할 수 있는 요인이다.

김관수 자동차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자동차 시장이 미국이나 EU국가 등에 비해 작은 것이 사실”이라며 “자동차회사가 자사의 도움이 되는 시장에 온갖 정성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국내 소비자들이 유난히 외제차를 선호하는 현상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이후 판매량 감소를 우려해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실시해 호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한국서 판매량이 급감하자 전 차종 무이자 할부에 최대 1800만원 할인 판매를 실시했고, 지난해 11월에는 4517대를 팔아 국내 시장 진출 이후 최대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대비 65.6%나 급증한 수치다. 이어 올해 3월에도 대대적으로 차량 가격을 할인해 전체 판매량이 12.2% 확대됐다. 이에 따라 폭스바겐이 불법행위를 무마하기 위해 할인행사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수입차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의 외제차 선호는 남다르다. 대폭 할인된 가격에 폭스바겐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보니 오히려 이 상황을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며 “조작된 디젤가스가 한국의 대기를 오염시키고, 결국 국민들의 건강도 악화시킨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내 운전자들의 현명한 소비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만 싸게 사면 된다’는 인식을 버려야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부 기업들을 징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폭스바겐 사태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손해배상에 대한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 대기업을 상대로한 소송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관계자는 “정부는 소비자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질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에 대한 고민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며 “폭스바겐그룹이 미국 소비자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실시한 것은 집단소송제도의 존재와도 관련이 있다. 소비자들이 정당하게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명섭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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