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 없다는 점 악용될 수 있어…대안은 ‘도로교통법 개정’

▲ 차량을 긁고 도망가는 ‘대물 뺑소니’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운전자가 많지만 법적 처벌 조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허점을 노린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어 전문가들은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출처=소비자경제DB)

[소비자경제=정명섭 기자] 차량을 긁고 도망가는 ‘대물 뺑소니’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운전자가 많지만 법적 처벌 조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허점을 노린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어 전문가들은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보험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대인·대물 교통사고 건수는 2010년 369만7753만건에서 2011년 367만8556건, 2012년 393만63556건, 2013년 411만5587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물 사고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차량 운행이 늘어나면서 교통사고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대인사고는 감소하고 대물 사고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소유자들은 차량을 주차시켜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차량에서 이유 모를 사고 흔적 흔적을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 차를 긁거나 들이받고 사라지는 것을 흔히 ‘대물 뺑소리’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경미한 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상대방 운전자가 별다른 조치 없이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관련 피해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물뺑소니를 당한 이들은 자비를 들여 차량을 고칠 수밖에 없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 양주에 사는 직장인 정 모씨(30·남)는 “회식 자리에서 음주하는 바람에 차량을 공용주차장에 세워두고 귀가했는데 밤 사이 누군가가 뒷 범퍼를 긁고 갔다”며 “사고 당시 블랙박스 녹화 영상에 상대방의 차량이 정확히 보이지 않아 경찰에 피해 신고를 한 상태다. 정확한 견적서까지 이미 준비했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 모씨(29·남)는 “상대방이 내 차량을 긁고 나서 내리더니 흠집이 난 걸 보고 그냥 도망가는 모습을 CCTV로 확인했다”며 “추후 가해자를 찾아 적절한 보상을 받긴 했지만 상대 측에서 먼저 연락을 주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범인을 찾더라도 피해에 대한 보상만 해주면 사건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황당함을 느끼는 이유다. 특히 남의 차량에 피해를 입힌 뒤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등의 조치 없이 자리를 벗어난데 대한 추가적인 처벌은 없다보니 가해자 입장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경찰 통계에 따르면 대물 뺑소니가 신고된 것만 한 해 15만건에 이르지만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행법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형법의 대물손괴죄는 일부러 남의 물건을 망가뜨린 경우에 해당되는데, 운전하다가 다른 사람의 차량에 손해를 입힌 것은 실수로 인정돼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도로교통법 상에 남의 물건을 망가뜨린 경우, 과실손괴죄에 해당하는데 이 또한 자동차 종합 보험에 들어 있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형사사건이 아니다보니 경찰에 신고해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경찰은 CCTV를 조회하는 등의 조사를 해주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이에 따라 관련 법을 개정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도로교통법 제 54조 1항인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즉시 정차해 사상자를 구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는 규정에 인적 피해 뿐만 아니라 ‘물적’ 피해에 대한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문철 변호사는 “현재 대물뺑소니의 경우 사고 발생으로 인한 파편이 흩어져 2차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지만 이외에는 처벌할 수 있는 경우가 10%도 채 되지 않는다. 주차된 남의 차를 들이받고 뭔가 파편이 흩어지지만 않으면 그냥 도망가도 처벌 안 받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며 “이렇다보니 현행 도로교통법상은 ‘양심불량 양산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 개정을 통해 이에 대한 사안을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명섭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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