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엄연히 범죄 행위로 분류되는 만큼 법적 접근 필요"

[소비자경제=공동취재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더불어 구매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무리한 보상 요구를 일삼는 블랙컨슈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표적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확대되고 있다.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란 구매한 상품의 하자를 기반으로 해당 기업에 과도한 피해보상금을 요구하거나 거짓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각 기업들은 블랙컨슈머에 대해 이전 소극적 태도와 달리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정부 관계부처도 블랙컨슈머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 급증하는 블랙컨슈머…그들이 ‘갑’으로 올라선 까닭은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83.4%의 기업이 블랙컨슈머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절반은 사실과 다른 악성 댓글 등으로 인해 판매 감소까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유통사업장 노동환경 실태 조사’를 살펴보면 보면 전국 유통 사업장 114곳 3470명의 종사자 중 61%가 고객에게 폭언·폭행·성희롱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블랙컨슈머 사례가 최근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대사회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생태계를 꼽을 수 있다. 소비자는 다수의 판매처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판매자들의 생존은 소비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주권은 날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사업자는 고객에게 감동까지 제공해야만 재방문, 재구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왕’ 혹은 ‘갑’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다.

▲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더불어 구매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무리한 보상 요구를 일삼는 블랙컨슈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표적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확대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또한 블로그와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개개인 상호간의 실시간 정보량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기업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블랙컨슈머들이 악성 비방을 퍼뜨리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 블랙컨슈머들은 온라인 공간에 악성 댓글을 올리겠다고 기업에 으름장을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게시글이 공유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부풀려질 우려가 있고 급속도로 파급되는 효과를 무시하지 못하기에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원 상담센터에 문의하는 소비자들 중에서도 구체적인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기업의 잘못을 주장하는 극성맞은 분들이 일부 존재한다”며 “블랙컨슈머는 기업뿐 아니라 선량한 소비자에게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돼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 적극 대응하는 기업들,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

과거에는 소비자에 의해 문제가 거론되면 진위 여부를 떠나 기업이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블랙컨슈머들의 수법이 날로 교묘해짐에 따라 블랙컨슈머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여기에 필요한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등 기업 내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심지어 법적 대응도 불사하며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최근 블랙컨슈머가 형사 처벌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보통 법원에서 블랙컨슈머로 판단할 경우 공갈이나 사기, 명예훼손 등의 혐의가 적용돼 처벌받을 수 있다.

▲ 사진은 한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고 있는 소비자.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일례로 식품에 이물질을 고의적으로 넣은 후 금전 보상을 요구할 경우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고, 이 같은 사실이 법원으로부터 인정되면 형법 제347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온라인이나 언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죄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전혀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을 사실인 것처럼 적시해 명예를 훼손시킨 경우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또한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거나 매장에 찾아와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경우에는 업무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을 수 있다.

▲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거나 매장에 찾아와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경우에는 업무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을 수 있다. (출처=픽사베이)

그러나 소비자의 항의가 정당한지 또는 부당한지, 악의성을 가졌는지 등을 판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까지 블랙컨슈머에 대해 직접 적용되는 처벌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개별 행위에 대한 형사고소나 민사소송 형태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보상금을 요구하거나, 협박이나 폭력 등을 행사하는 등 블랙컨슈머의 조짐이 확인이 확인될 경우 녹취록 등 증거자료를 모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 선진국들, 악성 민원 관련 ‘세부 매뉴얼’ 제작으로 대응

해외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은 악성 민원이 발생했을 경우 기업과 개인 간의 분쟁으로 간주해 대부분 당사자간 소송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 분쟁이 발생하면 대부분 국가 기관이 개입하지만 미국은 기업 자율에 맡기고, 이러한 분쟁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국가 소비자 기관으로 넘겨 문제를 해결한다.

일본은 고객의 불만이 제기되면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꼼꼼히 기록하고, 불만 대응 매뉴얼을 통해 블랙컨슈머에 철저히 대응하고 있다. 각 상황에 맞는 응대 지침이나 세분화된 매뉴얼을 갖추고 원칙에 입각해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주는 정부가 주도해 ‘비이성적인’ 민원에 대처하는 실용 가이드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발생하는 악성 민원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순차적으로 개발하는데, 옴부즈맨 기관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 형태도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 소비자·기업 모두 블랙컨슈머 관련 교육 받을 필요 있어

일각에서는 소비자 교육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도 적절한 대응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소비자들의 문제 행동을 근절시키고 건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올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블랙컨슈머의 유형과 사회·경제적 폐해, 책임 있는 소비의 필요성 등을 담은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파할 계획이다.

또한 교육부와 협조해 이 콘텐츠를 초·중·고교의 교육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포할 예정이다. 또 언론사와 소비자단체, 사업자단체,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한 캠페인을 실시해 소비자들의 자정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매년 ‘블랙컨슈머, 기업의 대응 전략’이라는 주제로 교육을 실시한다. 변호사, 기업 책임자, 소비자 전문가 등으로 강사진을 구성, 기업의 고객 대응 실무자를 대상으로 블랙컨슈머 대처 방안에 대한 교육이 진행된다.

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김태영 전문위원은 “매년 늘어나는 블랙컨슈머를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선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며 “기업 사례, 유형별 블랙컨슈머 대응 방법, 법적 대응 전략 등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태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과 과장은 “현재 공정위 차원에서는 ‘책임 있는 소비자’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일부 블랙 컨슈머들을 대응하는 별도의 정책 방향은 아직까지 없지만 이는 엄연히 범죄 행위로 분류되기도 하는 만큼 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명섭·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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