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선언에도 정부 산하 단체 어느 곳도 적극 나서지 않아

▲ 일본 오사카의 번화가 도톰보리 강 양옆에 설치된 옥외광고 모습. 이 독특한 모습 때문에 오사카의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소비자경제=김은희 기자] 정부가 지난해 차세대 광고 산업으로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후 올해 7월부터 본격적인 규제가 완화되지만 아직까지 해당 산업이 본격화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서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도적·기술적 미비한 부분을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본 오사카의 번화가 도톰보리 강은 밤에도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넘쳐난다. 강 양옆으로 이어지는 옥외광고 때문이다. 오사카의 상징인 이 거리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 할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국내에서도 곧 이러한 풍경이 펼쳐질 예정이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덕분이다.

오는 7월부터 이 개정안은 ‘자율 구역’에 한해 허가와 신고 없이도 옥외광고판을 설치할 수 있게 한다. 이 경우 종류, 모양, 크기, 색깔 등의 제한 없이 설치가 가능해 국내에서도 뉴욕 타임스퀘어나 오사카 도톰보리 같은 거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행령에서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디지털 방식의 옥외광고물’이 확대 허용된다는 것이다. 일명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라 불리는 이 형태는 디지털 관제 센터를 통해 다양한 유형의 미디어가 나오는 형태의 광고물을 의미한다.

매일 타고 내리는 지하철의 차량 안내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교통 안내와 더불어 광고, 뉴스 등을 함께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광고를 접하게 만든다.

이러한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의 전망은 무궁무진하다. 그 자체가 ‘미디어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하나로 광고 뿐 아니라 길 안내와 같은 간단한 정보, 미디어 콘텐츠까지도 재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송 채널’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점차 이용자 개개인을 식별해 맞춤형 정보와 광고를 제공하는 형태로 나아갈 전망이다.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는 광고 시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 삼성전자가 모스크바에 설치한 초대형 사이니지 옥외 광고판. 디지털 사이니지 방식으로 갤럭시 S7 광고가 계속 재생된다. (출처=삼성전자)

해외의 경우 이미 사이니지 시장을 벌써 육성 및 지원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세계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규모가 2014년 150억 달러에서 2020년 220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의 경우 디지털 사이니지가 ICT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탄력적 정책을 펴고 있다. 각 주에서는 뉴미디어에 맞는 정책을 내놓고, 옥외협회에서는 ‘모바일·소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산업 진흥을 위해 함께 애쓰는 모습이다.

한국 정부도 최근 팔을 걷어 부쳤다. 디지털 사이니지를 차세대 광고 산업으로 인식하고 규제 완화 및 육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행정자치부의 개정안 시행은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이에 질세라 2019년까지 78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산업 진흥해 힘쓸 것이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바로 해당 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특히 콘텐츠 부분에 대한 우려가 많다. 국내 디스플레이 및 네트워크 산업의 경우 세계 선두 자리를 이끌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콘텐츠 분야의 경우 상대적으로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 미래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 활성화 대책안’에서 국내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의 콘텐츠·운영체계·소프트웨어를 선진국 대비 평균 1.2년의 격차가 벌어져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에 중소업체 육성을 위해 디지털사이니지 특화 센터 건립과 함께 맞춤형 기업으로 글로벌 스타기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와 산하 콘텐츠진흥원, 미래부 및 산하 스마트콘텐츠센터 어느 곳에서도 아직 관련업체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

지난 25일 미래부는 역량 있는 ‘스마트 콘텐츠’ 관련 중소업체들을 지원하겠다며 올해 65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아직까지 광고물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부 관계자는 “예산의 한계로 인해 차차 늘려가는 중”이라며 “아직까지 스마트·모바일 사업 위주로 시작하고 있는 단계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이니지 분야의 경우 내년 예산으로 편성해놓은 상태”라며 “지금은 품질인증센터를 확대·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옥외 광고 전문기관의 한 연구원은 “현재 정부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지원에 치중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내부 ‘콘텐츠’가 관건인 만큼 정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국내 디지털 사이니지 분야는 이제 첫 걸음을 떼는 것”이라며 “그동안 그저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돼왔던 ‘옥외광고’가 이제 산업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개선해나가야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디지털 사이니지 분야가 정말 누구나 뛰어들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사업이라는 걸 보여줄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디지털 사이니지 분야 조합을 이끌고 있는 김성원 디지털융합협동조합 이사장은 “대기업과 중소업체들의 협업을 통해 함께 산업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상생할 수 있는 수평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은희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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