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대포통장 등 금융범죄 근절 위해 불가피”

▲ 강화된 통장개설 절차에 소득이 없는 창업준비자들과 미취업자들은 고충을 겪고 있다.

[소비자경제=공동취재팀] 금융범죄를 막고자 강화된 통장개설 절차가 창업을 희망하거나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백수(창업 희망자)는 통장개설도 힘들다”라며 호소하는 장문의 사례가 게재됐다.

글쓴이는 지난 3년간 개인 사업을 했고, 2달전 다른 창업을 알아보기 위해 기존 사업을 접었다.

어느날 그는 거래를 해왔던 은행 대신 새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하려 은행에 들렀지만, 은행으로부터 “소득증빙자료가 없기 때문에 기존처럼 자유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을 만들기 힘들고, 통신료 자동이체 통장을 개설하면 하루 소액한도의 인출만 가능한 통장은 개설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이런 제한의 이유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문의를 했고, “최근 급증하는 대포통장 및 사기계좌 등의 악용을 막기 위해 통장개설 절차 및 기준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 무슨 돈 쓸 일이 있냐며 소액만 인출하는 통장을 쓰거나 억울하면 취직해서 소득증빙자료 제출하고 제대로된 통장을 발급받으란 이야기 아닌가”라며 “대포통장 예방책이 선량한 국민을 잠재적 대포통장 악용자로 보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글쓴이의 사례는 커뮤니티 회원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한 누리꾼 역시 “저도 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러 갔더니 기준이 강화되고 절차도 복잡해졌다”며 “물론 이것이 (대포통장 예방을 위한) 좋은 정책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은 알지만, 소득없는 백수는 통장도 자유롭게 만들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이 사례처럼 최근 은행권 내의 통장 개설 절차는 과거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지난 2014년 금융당국이 ‘통장개설 목적 확인제도’를 만들어 각 은행들이 이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또 지난해에는 금융당국이 이른바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위한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자유 입출금식 계좌와 적금 통장 등의 개설요건을 한층 강화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신분증과 도장 그리고 소액의 신규 입금액 등이 있다면 자유롭게 통장계좌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지만, 개설요건 강화 이후 신규 통장과 휴면 중인 통장의 재발행 절차 역시 까다로워졌다.

특히 급여계좌를 포함한 자유입출금 통장의 개설을 위해서는 소득증빙 서류를 제출해야만 하는데 여기에는 재직증명서와 공과금 납입영수증 등이 포함된다. 또 은행들은 개인마다 한 달 내 개설가능한 통장수를 1개로 제한하는가 하면, 신규개설을 원하는 고객들의 금융거래 목적을 철저히 확인하고 있다.

▲ 금융권은 통장개설 절차가 까다로워 일부 금융소비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것에 대해 "대포통장 등 금융범죄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출처=금융감독원 공식 페이스북)

물론 다수의 금융소비자들은 대포통장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고, 국민과 우리, 신한은행 등이 소득증빙자료 등의 제출이 없이도 하루 인출·이체를 창구에서 최대 100만원(ATM 및 전자금융 30만원)까지만 제한해 개설 가능한 ‘금융거래 한도 계좌’ 또는 ‘소액거래 통장’을 출시하며 이용자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기분좋은 마음에 통장을 개설하러 은행에 들린 고객들은 모두 잠재적 대포통장 악용자로 의심을 받으면서, 소득이 없는 무직자의 경우 자유 입출금식 계좌와 적금 통장 등의 개설이 힘들다는 목소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소액거래 계좌 역시 자유로운 입출금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의 불만은 수그러들고 있지 않다.

사실 이 제도로 인해 가장 큰 불편을 겪으며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글쓴이의 경우처럼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는 ‘창업지원자’들이다.

▲ 창업에 성공해 일에 보람을 느끼는 미소 뒤에는 사업자통장 개설로 인해 겪었던 까다로운 절차들에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출처=중소기업청 공식블로그)

지난해 액세서리 전문점 개업에 성공한 일산에 사는 안 모씨(28)씨는 창업 준비를 위한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사업자금 마련 등에 많은 애를 먹었지만, 특히 “사업자금 모으는 것만큼이나 힘들 줄 몰랐다”며 개인 사업자통장개설 절차로 인해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안씨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개인구좌는 군시절 발급받았던 월급통장과 계좌번호도 잊어버린 기억에 없는 통장밖에 없었고, 소규모 사업장이다보니 새롭게 개인 계좌를 개설하려 했다”며 “그런데 창업준비로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은행에서 개인 통장개설을 받아주지 않아 사업자통장을 개설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업자통장을 만들러 은행에 가니 개설 목적과 여러 가지 정보에 대해 까다롭게 심사를 했고, 사업자등록증 외에도 거래내역나 세금계산서, 물품공급 계약서, 납세증명서 등을 제출하라고 했다”며 “굉장히 복잡했고 신규사업장에 이런 것을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에 잊고 있던 개인통장을 살려 사업자통장으로 이전하려 했지만 이 통장도 장기휴면통장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취조’를 받았고 필요 증빙서류는 똑같았다”고 말했다.

안씨 역시 대포통장을 막기 위한 취지는 좋지만, 선량한 창업 지원자의 입장에서 이런 지나치게 까다로운 절차로 인해 오히려 뭔가 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을 뻔 했다고 고백했다.

▲ 까다로운 통장개설 절차로 인해 일부 창원지원자들은 "창업자금마련과 사업계획보다 통장만드는 게 더 어려웠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그는 “취업난도 뚫지 못했고, 그래서 큰 포부를 가지고 벌인 사업계획이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통장 개설 때문에 큰 애를 먹었다”며 “음주단속 때 측정기에 숨을 한 번 불어넣는 간단한 절차라면 모르겠지만, 대포통장을 예방하는데 하루하루가 바쁘고 금같이 느껴질 창업지원자들이 통장개설 하나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금융범죄 근절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한 국내 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작년부터 통장개설 절차가 강화됐기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시는 고객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물론 준비할 서류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사업자통장 개설의 경우에는 개정 전에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준비된 절차가 있었고 지금은 다수의 고객들께서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힘들지만 철저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시고 계신다”라고 말했다.

▲ 은행권에서는 통장개설 절차 강화에 대해 금융범죄 근절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면서도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홍보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런 강화된 통장개설 절차가 창업 준비자들에게는 오히려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그는 “최근 개인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쓰이는 경우보다 법인계좌에서 대포통장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업자통장의 개설 절차를 더욱 까다롭게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앞으로 고객들이 강화된 통장개설 절차에 대해 공감해주실 수 있도록 더욱 많은 홍보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금융감독원 측에서는 그동안 계좌개설 강화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다양한 민원이 제기돼 지난 4월, 사업자통장 개설에 대한 규정의 일부를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지난 4월 14일에 신규 창업법인 계좌 개설 관련 제도 개선 안내를 통해 그동안 신규 창업법인의 계좌 개설 요청이 있을 때 세금계산서 등 기존 법인만이 낼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하다는 민원이 많았기 때문에 임대차계약서 등을 통해 실제 사업영위가 확인되면 까다로운 증빙서류 없이 계좌를 개설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일부 영업점에서 통장개설이 까다롭다는 말이 있어 일부 개선을 했고 앞으로도 문제가 생긴다면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소상공인들의 창업을 지원해주는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일부 창업지망생들이 통장개설 절차 강화에 힘겨워한다는 질문에 금융당국의 이런 정책의 시행을 “알고 있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나라에서 하라는 걸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한민철·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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