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형 변호사

[소비자경제 칼럼] 포털 사이트에서 범죄, 재판에 관련된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재판부의 형량이 너무 낮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같은 경우에는, 범죄자에 대한 비난 외에도, ‘판사 자식이 피해자면 그런 판결을 내렸겠느냐.’, ‘이따위 재판을 한 판사의 실명 공개해라.’라는 등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성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일반 국민들이 중한 형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범죄들에 대하여, 국민감정에 반하는 낮은 형이 선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들처럼 판사들이 고시원에 처박혀서 공부만 하다가 판사가 되어 세상물정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이 글에서는 형사재판에서 어떻게 형량이 결정되는지와, 국민들의 감정에 반하는 낮은 형이 종종 선고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법률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판사가 나쁜 일을 하여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을 감옥에 보내기도 하고, 돈을 배상하라고 명령하기도 하는 등, 조선시대 사또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재판은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으로 구별됩니다. 민사재판은 쉽게 말하면 돈과 재산에 관한 재판인데, 원고가 피고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 ‘나에게 손해를 입혔으니 돈으로 배상을 하라.’, ‘부동산을 매수하고 매매대금을 다 주었으니 등기를 이전해라.’는 등의 요구를 하여 원, 피고 사이의 권리, 의무관계를 확인하는 재판입니다.

반면 형사재판은, 검사가 피의자를 수사 하여 재판에 넘기면(재판에 넘기면 피의자의 지위가 피고인으로 바뀝니다), 그에 대한 유, 무죄 및 유죄인 경우 어떤 벌을 줄 것인지 결정하는 재판이고, 어떤 벌을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형을 정하는 양형 절차입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죄가 인정될 경우, 그게 걸맞는 형량을 정하는 첫 번째 기준은 문제된 범죄를 규정한 법률의 규정입니다. 예를 들어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절도죄에 대한 양형은 이 규정을 출발점으로 합니다.

위와 같은 개별 범죄에 관한 규정 외에 법률은 형을 가중하는 사유와 감경하는 사유들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형법 제35조는, 형을 살고 나온 사람이 3년 이내에 다시 죄를 지으면 2배까지 가중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는 법률상 형을 가중하는 사유입니다. 형법에는 이 외에도 다른 법률상 가중사유들에 관한 규정들이 있습니다.

한편, 형법 제10조 제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을 감경하는 근거가 바로 이 규정입니다.

이러한 규정은 법률상 형을 감경하는 사유인데, 형법에는 그 외에도 다른 법률상 감경 사유들이 있고, 특히 형법 제53조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사유가 있는 때에는 판사의 재량으로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작량감경 사유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위와 같은 규정에 의해 형을 가중하거나 감경할 때, 판사 마음대로 형을 줄이고 늘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역시 법률의 규정에 따라 가중, 감경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기징역형을 감경할 때는 장기의 2분의 1 까지만 감경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위와 같은 법률의 규정들 외에, 대법원 산하 연구기관인 양형위원회라는 곳에서 상세한 양형기준을 만들어 판사들로 하여금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모든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니지만, 자주 발생하는 대부분의 범죄들에 대해 양형기준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형기준은 법률이 아니라서 판사들이 이를 따를 법률상 의무는 없으나, 특별한 이유가 없이 양형기준을 따르지 않을 경우 상급심에서 재판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판사들은 대부분 양형기준을 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처럼 판사들은 주관적으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허용하고 있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고, 더욱이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이 상세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판사의 양형에 대한 재량권은 더욱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배심제처럼 일반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여 유, 무죄 뿐만 아니라 양형에 관한 의견까지 제시하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배심원들이 판사가 재판을 하는 경우와 별 차이가 없는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와 같이, 판사가 형량을 정하는 일반 재판의 경우와 배심원이 형량을 정하는 국민참여재판의 형량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은, 일반 국민들이 기사를 통해 제한된 사실관계만을 접하고 감정적으로 판단할 때는 판사의 형량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자세히 접하고 적정한 양형에 대해 깊이 생각한 후에는 판사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판사들이 형사재판에서 내리는 양형은 현행법이 허용하는 재량의 범위 내에서의 적절한 양형인 경우가 보통이고, 판사들이 고시원에 처박혀서 공부만 했기 때문이거나, 판사들이 성범죄에 특별히 관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판사의 양형이 너무 낮다고 비판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첫째로,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판․검사 출신인 소위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변호사를 통해 형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판사들도 억울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해소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판사의 양형을 비판하는 두 번째 이유는, 기사를 통해 제한된 사실관계만을 접하기 때문입니다. 즉 범죄 관련 기사에는 자극적인 사실만 부각되고 형을 감경할만한 사유는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특히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도 나오지 않는 기사들도 있는데, 양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양형을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번째로, 법률 자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개별 범죄에 대한 형량 자체가 국민들의 법감정에 비추어 너무 낮게 규정되어 있거나, 두 개 이상의 범죄를 범한 범죄에 대해 미국처럼 형을 합산하도록 규정되어 있지 않고 중한 범죄의 형을 가중하도록 규정한 규정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법감정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형량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낮은 형량이 선고되는 것은 판사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법 자체의 문제이므로, 비난을 한다면 국민들의 법감정을 반영한 법을 만들지 못한 국회를 비난할 문제입니다.

파렴치한 범죄에 관한 기사를 보고, 그런 범죄자에게 고작 징역 몇 년이 선고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판사들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가 치솟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깊게 생각해보면 낮은 형량에 대해 판사가 욕을 먹어야 할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범죄에 대한 공분은 필요하지만, 성실히 법을 집행하는 판사들에 대한 이유 없는 비난이나 인신공격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저작권자 © 소비자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