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한민철 기자] 최근 한 외국계 보험사 홍보팀 직원과 고객민원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험가입 시 고객들이 작성하는 계약서류들을 설계사들이 ‘대필’하는 관행에 대해 ‘고객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보험상품을 가입할 때 설계사들로부터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고, ‘계약전 알릴 의무사항’과 ‘청약서’ 그리고 ‘상품설명서’ 등에 자필서명을 남겨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보험대리점에는 소비자들이 중간에 변심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고, 빠른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목적 등으로 이 서류들을 대필하는 경우가 관행처럼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는 지난해 유명 보험대리점에서 일하며 설계사들이 고객들로부터 ‘계약전 알릴 의무사항’만을 받고, 여기에 작성된 고객의 필체를 흉내내 ‘청약서’와 ‘상품설명서’ 서명란에는 계약자의 동의없이 대필로 작성하는 것을 상당수 목격한 적이 있다.

그들은 청약서와 상품설명서에 고객들이 작성할 부분이 많아 중간에 짜증을 느끼거나 마음을 바꿀 수 있고, 무엇보다 상품설명서에는 자신들이 상품을 권유할 때 언급하지 않았던 상품의 단점 등의 내용을 나와있어 ‘사문서 위조이자 계약 무효’의 사유가 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필을 하고 있었다.

물론 보험가입 고객들이 서명해야 할 서류들은 그 양이 의외로 많고, 작성 중간에 불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것이라는 보험사 관계자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잠깐의 편의가 아니다. 상품에 대한 보다 철저한 확인과 설계사들에 마음을 열수 있는 신뢰다.

만약 설계사가 고객에 변액유니버셜 상품을 권유할 때 원금보장 유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로, 상품설명서에 ‘이 상품은 원금보장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덧쓰고 서명하는 절차를 대필한다면 과연 이것이 고객의 편의를 봐주는 절차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는 불완전판매의 원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험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국내 소비자들의 불신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대필에 대해 보험사와 대리점 그리고 설계사마다 나름의 입장은 있다.

보험사는 원수사 직원들은 대필을 절대 하지 않는다 주장하며, 대필 금지에 대한 사전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대리점을 탓하고 있다. 보험대리점 측은 대필은 설계사 개인의 일탈이자 대필된 서류를 재차 확인하지 못한 보험사의 잘못도 지적하고 있다. 또 설계사들은 ‘실적압박’과 대리점의 교육 부족 그리고 대필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을 최소화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보험사도 자사의 상품을 안내하기 위한 대리점 교육을 실시한다면 대필 등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한 주의를 반드시 당부해야 하며, 대리점도 ‘아무나’ 채용해 자산관리사나 재무설계사라는 타이틀을 주고 상품을 판매할 것이 아닌 철저한 교육기간을 가진 후 영업현장에 투입하는 등 대필 방지에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고객과 직접 마주했던 설계사들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닌 고객의 신뢰를 얻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필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필수서류에 사인하지 않고 충분한 설명을 듣지도 못한 채로 가입해 피해를 호소하며 보험을 불신하는 소비자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민철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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