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형 변호사

[소비자경제 칼럼] 우리나라에는 주택을 빌려 전세, 월세를 사는 주택 임차인(세입자)과 상가를 빌려 영업을 하는 상가건물 임차인을 보호하는 특별한 법이 있는데, 전자가 주택임대차보호법, 후자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개인간의 권리인 사권(私權)은 크게 물권(物權), 채권(債權)으로 나뉩니다. 이들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물권은 물건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로서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표시되며, 권리자는 누구에게나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유권, 저당권 같은 권리가 이에 해당합니다.

반면 채권은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 어떤 행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예를 들면, A가 B에게 돈을 빌려주면, A는 B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이러한 권리가 바로 채권입니다.

이처럼, 채권은 특정인에 대한 권리일 뿐 물권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할 수 있는 금전채권이 대표적으로 채권에 속하고, 주택 또는 상가건물의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하여 갖는 임차권 또한 채권입니다.

어떤 권리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채권이라는 것이 실제 어떤 의미인지는 주택이나 상가 임대차의 경우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주택 세입자가 소유자로부터 주택을 전세 또는 월세로 빌리는 계약을 체결한 경우, 세입자는 임대차계약에 따라 임차권을 갖는데, 임차권은 주택이라는 물건에 대한 권리이므로 얼핏 보면 물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판례법인 커먼로(common law)는 주택 임차권 채권으로 분류하지 않고, 소유권, 저당권 등과 함께 부동산법(real estate law)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체계상 임차권은 물건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가 아니라 집주인과의 계약에 따라 집주인에게 해당 주택의 사용을 청구할 수 있는 채권입니다. 따라서 임차인은 자신의 임차권을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집주인에 대해서만 주장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실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집주인이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 주인이 바뀌는 경우, 기존에 전주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은 새 주인에게 자신이 정당한 임차인이라는 점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고, 새 주인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면 아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채 집을 비워줘야 하며, 심지어 보증금조차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매매는 임대차를 깨뜨린다”(kauf bricht Miete)는 로마법의 원칙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월세가 대부분이고, 보증금으로 2-3개월치 월세만 지불하므로, 집주인이 바뀌어도 임차인의 손해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특수한 전세 시스템은 임차인이 거액의 보증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서민들의 경우 집주인이 바뀌면 전 재산을 잃는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막고 주택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전통적인 물권, 채권이라는 권리 구분에 구애받지 않는 입법이 바로 1981년에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임차인은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는 매우 간편한 절차만으로 임대인 외에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의 임차권을 주장할 수 있는 물권자와 같은 지위를 같습니다.

따라서 집주인이 주택을 매도하거나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 소유자가 바뀌는 경우에도, 임차인은 계약기간이 끝날때까지 집에 거주할 수 있고, 계약이 끝나면 새로운 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할 때 동사무소에 임대차계약서를 가지고 가서 확정일자라는 도장을 받으면, 임대차 보증금에 대해서 저당권자와 같은 지위가 부여되어,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저당권자와 동일하게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됩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에게 위와 같은 권리가 부여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만, 이는 기존의 법체계에 반하는 상당히 파격적인 입법이었고, 주택 소유자의 권리를 해칠 수 있는 여지도 많아 도입 당시 상당한 반론이 제기되었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비록 형식논리상으로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법체계에 반하고, 계약당사자중 일방인 임차인만을 보호하는 법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큰 부작용 없이 시행되어 왔고, 사회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성공적인 제정‧시행은, 제정 당시에는 다소 파격적인 입법도 제정 목적이 정당하고, 세심하게 그 내용을 구성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상가건물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2001년도에 제정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상가건물 임차인 보호에 큰 역할을 해오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적용범위를 보증금이 일정금액 이하인 소액 보증금 임대차로 한정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3년 및 2015년 법률 개정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핵심 규정인 임차인의 갱신요구권 규정과 대항력 규정이 고액 보증금 임대차에도 적용되도록 법률을 개정하였고, 또한 권리금 보호규정을 신설하여 모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적용되도록 하여 이제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명실상부한 임차인 보호법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려 서민, 중산층의 주거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만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또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자영업자들의 보호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박재형 변호사 약력

연세대 법학과 졸업(법학사)

UCLA School of law 졸업(법학석사)

42회 사법시험 합격

32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고등검찰청, 인천지방검찰청 공익법무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현)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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