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우 대표 겸 편집국장

[소비자경제 칼럼] 삼성그룹 창업자였던 고(故) 이병철 회장은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생각한 사업을 관철시킨 CEO였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짱은 두둑했다.

이병철 회장은 삼성의 모태가 됐던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그리고 삼성전자까지 사업추진 과정에서 회사 경영진들과 매번 큰 갈등에 부딪쳤었다.

그는 임원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가루 생산을 추진했다. 설탕사업과 상호 시너지를 낼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밀가루 사업은 첫해 적자를 냈지만 이후 국내 생산의 1/4을 책임졌다. 이 회장의 판단이 맞았던 것이다.

제일모직 역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번에는 공장규모를 놓고 임원들과 갈등이 있었다.

임원들은 처음에는 공장규모를 작게 시작하자는 뜻이 있었지만 이 회장은 최신설비로 큰 공장을 고집했다. 작은 규모가 단기적으로는 유리하나 장기적으로는 불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제일모직은 국내시장 70% 점유하며 국내 섬유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아들 이건희 회장도 부전자전(父傳子傳)이었다. 그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쓰던 그 옛날 그룹 내 반도체사업을 구상했다.

이 회장은 1973년 중동 오일쇼크에 큰 충격을 받은 후 한국산업이 보다 생산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확신은 이 회장의 통찰력이 근간이었다. 언론사 사장을 거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들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1974년 부도위기에 몰렸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도 그의 탁월한 통찰력이 뒷받침됐다.

하지만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말만 반도체였지 TV나 라디오에 들어가는 회로조차 만들기 버거웠고 D램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기술도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반도체’는 삼성그룹 내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했다.

비난의 화살이 이 회장에게 집중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굳건히 참고 견뎠다. 삼성그룹의 미래 더 나아가 한국 산업발전의 비전을 거시적 안목에서 한 단계 멀리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함께 1983년 2월 동경에서 반도체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경영진은 “회사가 위태할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반도체 사업진출이 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반도체 사업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에 이어 애니콜,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삼성전자의 성장 모멘텀을 주도했다.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난지 28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급성심근경색증으로 1년 6개월 넘게 서울삼성병원에 입원중이다. 향후 이 회장이 병석에서 일어나더라도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제 삼성호의 선장은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이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남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과감히 도전하고 추진할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평가하기에 이르다.

다만 그의 인재 등용 방법에 대한 세간의 궁금증은 점차 커지고 있다. 당장 12월 1일 사장단, 4일 임원인사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변화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삼성증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핵심 계열사들의 경영실적 하락을 만회할 수 있는 쇄신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삼성은 최근 건물을 매각하고 전용기를 팔고 임직원 숫자를 줄이고 있다. 해외 주재원까지도 불러들일 계획이다. 그동안 방대해진 삼성을 삼성전자 중심으로 단일화해 조직을 더욱 슬림화한다는 게 이 부회장의 플랜이다.

그룹 내 각 계열사 구조조정은 이미 시작되었고 일부는 완료됐다. 추가 구조조정이 있을 수 있고 일부 IT전자 계열사 간 다시 합병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삼성 안팎분위기는 뒤숭숭하다고 한다.

이재용의 삼성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가올 경제위기에 미리미리 대처하는 것은 기업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정안의 모델을 삼성이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조직을 효율화하고 축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말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삼성의 글로벌화 주춧돌 역할을 해왔던 선진국 주재원 감축을 단순한 잣대로 판단할 사항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삼성은 여전히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하고 기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이란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가야한다는 부담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입사 24년간 축적한 글로벌 인맥, 경험, 열정 등으로 삼성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 믿는다. 또한 그동안 갈고 닦았던 리더십을 앞으로 십분 발휘할 것이다.

다만 남들이 모두 반대할 때 과감하게 사업에 도전했고 경제가 어려울 때 오히려 직원을 믿고 썼던 선대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모습을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 

 

대표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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