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충우돌 '여성시대', 커뮤니티 사이에 왕따 되나?

[소비자경제=황영하 기자] 온라인 커뮤니티들의 왜곡된 인터넷 문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회원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거대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 간에 충돌이 빚어지면서 검찰 고발까지 이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20~30대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여성시대(이하 여시)’가 있다. 다음 카페로 출발한 여시는 장동민, 서지수 사태 등 최근 불거진 논란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건전한 커뮤니티로 포장됐지만 전혀 다른 이면이 노출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커뮤니티들이 서로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가 우월하다고 자랑하면서 다른 커뮤니티를 깎아 내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도를 넘을 경우 문제가 된다. 최근 여시 회원이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 회원 중 한명이 자신의 지인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여시는 그 일로 오유 전체를 싸잡아 비난했다. 오유는 끈질긴 추적 끝에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서의 답변을 그대로 전하며 여시를 역공격했다.

이런 와중에 여시 회원 중 한 명이 SLR클럽(일명 스르륵)에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오유 게시판에 폭로했다. SLR클럽 회원들이 소모임 공간을 확인한 결과 SLR클럽의 다른 게시판과 달리 음란물 등에 대한 신고 기능이 없고, 파일 업로드 용량도 2MB가 아닌 15MB까지 허용하는 등 특혜를 주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문제는 여시벙커에는 섹스파트너를 구한다거나 성인용품 사진이 올라오는 탑시(탑시크릿) 게시판이 있었다는 점이다.

SLR클럽 일부 회원(일명 스르륵아재)들은 성경험, 성인용품 사용기를 비롯해 수위를 넘는 애니, 망가, 동영상 등을 공유하는 탑시 게시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SLR클럽 운영진에 해명을 요구했다.

SLR클럽 운영진이 커뮤니티에 분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회원들의 활동을 통제하려 하자 회원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한 회원은 ‘카메라 커뮤니티에 퇴폐적이고 더러운 글들을 올리는 게시판을 만들어 주고 여자들만 이용하게 했다’며 운영진을 비난했고, ‘운영진이 스스륵에 여성용 소라넷을 만들어 줬네’, ‘성게(성인게시판)에 올리면 욕하고, 소모임에 올리면 칭찬하는 것들’이라는 비난 댓글이 이어졌다. 나아가 ‘스르륵 안녕’이라는 댓글들과 함께 사이버 망명을 택하는 회원들도 있다.

네이버 카페에 ‘SLR클럽 망명자 모임’이 생기고, 딴지일보 게시판으로 대규모 사이버망명 움직임이 일었다. 딴지일보에서는 “지금 서버 중설 중입니다. 더 빠르게 해 드릴께요. 잠시만요”라는 공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 SLR클럽 일부 회원들이 여성시대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결국 참지 못한 SLR클럽 회원 일부가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여성시대를 처벌해 달라며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여성시대 일부 회원들이 음란물을 공유했고,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나눠봤으며, 타인에게 성적 수치심 등을 안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보통신사업법, 아동청소년보호에관한 법률, 성폭력특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당시 여시 운영자는 다음카페에 올린 공지글에서 “탑시가 목적처럼 보이면 안 되니 회원들이 게시판 신청도 많이 하고 스팸글이드 뭐든 아무글이나 많이 올려달라”면서 “탑시를 유지하려면 소모임의 게시판 중 하나이며 주목적이 아닌 걸로 보여야 한다”고 했다. 결국 소모임의 주목적이 성인물을 공유하는 ‘탑시’에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고발장을 작성한 SLR 클럽 회원들은 “여시회원들은 그동안 비밀리에 SLR 소모임 등에 탑시(탑시크릿) 코너를 열고 BL(Boy’s Love)계 음란물 및 ‘원나잇’ 후기를 올리고 공유했다”고 한다. 또한 “여시의 ‘망상’ 게시판과 SLR 등에 미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 공유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여시 사태는 폐쇄화되고 세력화된 거대 인터넷 커뮤니티가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사법처리를 통해서라도 이 문제가 바로잡히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 SLR클럽 내 여성시대 소모임에 올라온
성인용품 사용 후기.

◇ 여성들의 집단 심리가 논란 키워

SLR클럽이 여성시대에 소모임 게시판을 제공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게시판이 불법 음란물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간 여성시대는 6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회원수와 일사불란한 통제, 여시 특유의 ‘공감대 형성과 폭주’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인터넷 파괴력을 자랑했다. 여시의 강력한 인터넷 여론 조성 능력은 몇몇 연예인들에 대한 '여성 비하'라는 굴레를 씌우며 마녀사냥했던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여성시대 전에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가 그런 역할을 수행했지만 일베의 지나치게 삐뚤어진 시각에 대한 우려로 SLR클럽, 오늘의 유머, 클리앙, 웃긴대학, 인벤 등 다른 거대 커뮤니티들이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일베를 공격했다. 결국 ‘일베충’이라는 말이 생기고,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일베’를 한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성시대가 SLR클럽에 음란물을 공유하는 탑씨 게시판을 운영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지만 여시는 그에 대한 반성 없이 '아몰랑'이라는 그들만의 용어로 모른척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시 커뮤니티는 건재하다. 남자들의 가입을 차단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뒷자리 일부와 얼굴 사진까지 공개해야 한다. 인터넷 상에서 사회 문제를 파헤치는 일명 네티즌 수사대의 대부분이 남성인 점을 감안하면 여시는 금남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한 셈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여성들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반대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는 집단심리가 다른 커뮤니티들과 충돌을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나아가 음란물을 몇 번 접하면서 호기심이 커지고 누군가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급속도로 확산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성시대는 남성이 발 들이지 못하는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고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더러운 욕망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디씨같은 커뮤니티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다같이 비난하며 자정작용이 일어나지만 여시는 집단심리에 휩싸여 자정작용이 약하고, 다른 커뮤니티의 공격을 받으면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내서 공격하는 무자비함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인터넷 거대 커뮤니티들 간에 다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지만 요즘은 비교적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게 가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나무위키와 같은 기록물 저장 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커뮤니티 게시판은 오래된 글들은 자연스럽게 묻히고 찾아보기 어렵게 되지만 나무위키는 연관된 게시물을 모두 모아서 저장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준다. 여시 사태에서도 나무위키가 관여하면서 서로간의 음모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 대규모 인터넷 검열 우려

회원수가 1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거대 커뮤니티 SLR클럽과 약 6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여성시대가 충돌하면서 이 불똥이 인터넷 커뮤니티 전체에 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성시대가 SLR클럽에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폭로된 오늘의 유머를 비롯해 이번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디시인사이드(무한도전 갤러리), 일간베스트 저장소, 나무위키 등이 모두 수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성시대 사태는 자칫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여성시대에서는 자제하자는 글들이 올라오고,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어가는 기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모양새다. 나무위키, 오늘의 유머, 디시인사이드 무한도전 갤러리 등에서도 수위를 조절하고 조심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커뮤니티들이 한 발 물러난 것은 대검찰청이 TF팀을 꾸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단순한 음란물 공유를 넘어서 그 동안 P2P 토렌트를 통한 저작권 위반 사례나 불법 상거래 등 그동안 쌓여 있던 인터넷 커뮤니티의 불법 행위를 한꺼번에 근절하겠다고 나올 경우 커뮤니티 폐쇄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대검찰청이나 경찰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은 없지만 이번 사태가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대한 단속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커뮤니티 길들이기로 번질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황영하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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