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황영하 기자] 최근 금융정책이 혼란스럽다. 은행 방문 없이도 계좌개설이 가능해 고객 편의를 높였다고 하면서도, 계좌 개설시 금융거래 목적을 밝히지 않으면 계좌 개설을 거부하는 등 제한을 가하고 있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대구에 사는 신 모씨는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려고 했다가 거부당했다며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 신씨는 시티은행에서 국제체크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계좌를 신설하려 했다. 은행에서는 금융거래기록, 신용 정보 등 10여가지의 개인정보를 요구하고도 모자라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당시 신씨는 해외여행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씨티은행 국제체크카드를 발급받으려 했다. 신씨는 “씨티 국제체크카드는 해외 어디서나 수수료 1달러만 내면 현지 화폐로 바로 출금할 수 있어 해외 여행시 유용하다고 들었다. 카드를 발급할 때 필요한 서류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해 신분증만 가지고 은행을 방문했다”고 했다.

신씨는 은행 계좌를 만드는데, 비행기 티켓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대포통장을 막겠다는 것은 좋지만 모든 고객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해당 은행은 “대포통장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에서 지시한 사항으로 모든 통장을 개설할 때는 반드시 그 사용 목적을 확인해야 한다”며, “해외 출금이 가능한 계좌를 만들려고 했기에 확인하기 가장 쉬운 비행기 티켓을 보여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국 금융사기 대응팀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등에 악용되고 있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전 은행에서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도록 했다”며, “은행에서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지 검증해야 하는데, 어떤 서류를 확인할지는 각 은행에서 알아서 판단한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금융거래 목적 확인 절차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은행이 금용거래 목적에 대한 소명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계좌 개설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취재 도중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통장을 만드는 목적을 밝힐 수 없다면 대포통장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법적 근거가 없음을 인정했다.

또한 “계 모임이나 동호회 모임을 위해 통장을 만들려면 계원이나 회원들의 정보를 주면 된다. 은행에서 그들에게 확인하고 계좌를 발급해 준다”고 설명했다. 본인 계좌를 만들기 위해 제3자의 개인정보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제3자의 개인정보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발상은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또 정말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계좌 개설시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를 받고 싶다면 정당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후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황영하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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