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이남경 기자] 매년 3월 병원업계는 ‘호황’을 누린다. 설 연휴가 떡 버티고 있는 2월, 명절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명절용 창백한 화장법’과 ‘가짜 깁스’가 이미 널리 퍼져 이용할 수 없는 ‘구식 꼼수’으로 전락한 것을 보더라도 현대인들의 심각한 스트레스 지수는 짐작할 만하다. 명절불참용 핑계 만들기에 혈안이 된 현대인들은 두더지와 닮아있다.

어릴 적 한번쯤 두더지게임을 해봤을 것이다. 두더지는 기계 안으로 숨어 있다가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고는 망치질 한 번에 금세 다시 몸을 숨기곤 했다. 500원짜리 동전이 가르쳐준 선행학습이었을까.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묵직한 망치질을 피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동굴 속으로 몸을 숨겼다. 두더지化 되고 있는 것이다.

미혼인 30대 후반 친척오빠는 올해 설에도 업무과다를 이유로 가족모임에 불참했다. 안부 전화에 그는 “분명 결혼과 회사승진에 관한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라며 진짜 불참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 대학을 졸업한 한 친구도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설 연휴에도 친척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자랑할 만한 직장을 잡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친척들과 대학동기들로부터 쏟아지는 '오지랖'에 망치질 당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SNS(페이스북) 회원수는 1000여명에 이른다. 며칠 전엔 블로그까지 새로 시작했다. 인터넷상에서 하루에도 몇 십장의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의 '오지랖'을 기다리던 그녀는 왜 하필 가정 대소사가 많은 2월, 불현듯 두더지를 자청한 것일까.

원인은 그녀가 자신의 ‘완전한 모습’만을 노출하고 싶어 하는데 있다. 이는 비단 재수생과 미취업자, 노처녀 노총각들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과장이나 거짓말로 타인의 관심을 끄는 이를 뜻하는 ‘관종’이란 신조어가 생겼고 20대 SNS 이용인원이 70%에 이르는데 반해 대학교 졸업 참가율과 귀성객 수는 크게 줄어드는 희귀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두더지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두더지들의 동굴이 더 깊고 어두워진 데는 청년실업, 낮은 임금 등 취약한 사회조건이 한몫했다. 기성세대들은 경제 불황을 인정하면서도 먼 길 돌아가는 청년들의 발걸음에 조급해한다.

될성부른 나무를 떡잎부터 알아보기 바라고 있는 것이다. 2030세대의 동굴숨기는 어쩌면 자기방어의 최후수단이었는지 모른다.

 두더지가 나비 못되라는 법 있나, 는 말이 있다. 두더지를 나비로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격려라는 동전을 가득 넣어주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 정부 또한 공허한 정책이 아닌 역동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들과 소통이 필요한 이유다.

청년 스스로도 자신안의 두더지를 몰아내고 망치질에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향후 우울한 사회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신입채용 비율은 해마다 낮아지고 경쟁률은 높아간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해마다 증가하는 결혼기피 청년들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이 사회를 향한 당당한 발걸음이 절실할 때다.


이남경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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