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김정훈 기자] 질문이다. 다음 문제 중 11월 11일은 어떤 날일까? 1번 농업인의 날, 2번 가래떡데이, 3번 빼빼로데이, 4번 눈의 날, 5번 보행자의 날, 6번 지체장애인의 날, 7번 광고의 날.

정답은 1~7번 모두 해당된다. 11월 11일은 이렇게 다양한 기념일이 응집돼있는 날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면 10의 9은 3번이라고 답할 것이다. 11월 11일은 이제 우리국민 모두에게 비공식적으로 빼빼로데이가 되었다. 

원래 빼빼로데이는 숫자 ‘1’을 닮은 가늘고 길쭉한 과자 ‘빼빼로’처럼 날씬해져라는 의미에서 친구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날이다. 한 제과 업체의 마케팅 전략이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된 것이다. 


매년 빼빼로데이가 찾아오면 쳇바퀴 돌 듯 언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00데이’로 대표되는 대기업들의 마케팅 상술이 도가 넘었다는 것. 그리고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농업인의 날이나 눈의 날, 지체장애인의 날처럼 국가가 지정한 고유의 기념일이니 대기업의 상술에 놀아나지 말고 전 국민이 장애인들에 대해 한 번 더 되돌아보고 한국 농업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자는 것이 언론의 지적이다.  

   
이러한 기사들이 빼빼로데이 전후로 연일 터져 나오고, 심지어 유명 연예인들도 SNS를 통해 가래떡을 입에 물고 개념 인증샷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이 같은 반복적인 외침에 친한지인, 연인, 가족들과 함께 빼빼로를 주고받은 많은 사람들은 빼빼로를 입에 물은 채 알 수 없는 혼란을 겪게 된다.   


물론 빼빼로데이에 대한 비판제기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최근 모 제과 업체는 빼빼로 모양의 과자가 기존 판매 라인업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빼빼로데이 특수를 누리기 위해 기존 인기과자를 빼빼로 모양으로 길쭉하게 내놓는 희귀한(?) 전략을 선보이기도 했다. 


빼빼로데이를 활용한 대기업들의 지나친 상술은 분명 지탄받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과연 빼빼로데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도 사람들이 11월 11일 이 하루 동안 장애인들이나 농업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베풀었을까?


빼빼로데이 일주일 뒤인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몇%나 될까? 11월 11일이 지제장애인의 날이나 농업인의 날이란 것을 모르고 친구, 가족, 직장동료에게 평소 전하지 못했던 따뜻한 마음을 길쭉한 막대과자에 담아 정성을 전하려는 마음이 비판받아야 할 정도인지 생각하게 된다. 


빼빼로데이를 둘러싼 비판의 주체는 지나친 상술로 본질을 흐리고 있는 대기업들과 11월 11일이 지체장애인의 날인지, 농업인의 날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홍보조차 하지 않고 있는 정부와 관련부처다. 정성이 담긴 빼빼로를 포장해 선물하고 있는 사람들이 비판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빼빼로데이 덕분에 ‘가래떡데이’가 널리 알려지며 이날이 농업인의 날인 것이 홍보가 된 측면도 있다. 심지어 정부는 농업인의 날 하루 전날인 10일 한·중FTA를 타결하며 우리 농가를 더욱 씁쓸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빼빼로데이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유독 우울한 뉴스가 많았던 올 한해, 빼빼로데이 단 하루만이라도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잠시나마 서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날은 충분히 의미 있던 날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훈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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