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한 금융기관, 내실 있는 대책 기대해

어제 오늘 각 포털사이트 검색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한 건 각종 카드 회사이름들이었다. 지난 8일 KB국민카드, 롯데카드, 농협카드사가 KCB직원에 의해 내부 고객정보가 유출되면서 고객들이 개인정보유출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벌어진 촌극인 것이다.

그 동안 수차례 발생했던 개인정보유출사례와 달리 이번 사건은 외부 해커의 소행이 아닌 외주 개발자가 개인정보 DB에 접속해 내부 정보를 유출한 사례로 카드3사를 통틀어 무려 1억 건 규모의 어마어마한 대형 보안 사건이다.

특히나 이번 유출사건은 외주업체 박 모씨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통해 개인정보를 빼돌렸다고 검찰조사결과 밝혀졌다. USB를 회사 컴퓨터에 아무런 제재 없이 장착해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보안의 기본지침사항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 모씨는 삼성카드와 신한카드 전산망에도 유출을 시도했으나 암호화 프로그램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 말은 즉 슨 이번에 유출된 카드 3사는 자사 데이터에 암호화조차도 걸어놓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박 모씨가 유출을 시작한 시점이 지난해 2월부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1년 동안 유출된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던 국내 대표 카드사의 보안실태를 여과 없이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끓어오르는 국민들의 분노에 정부, 금감원, 금융위 등 금융당국은 입이라도 맞춘 듯이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지난 20일 유출사고와 관련된 전?현직 카드사 수장 및 임직원, KCB직원 등 약 30여 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또한 카드3사는 즉각 대응책으로 2차 피해 시 전액피해보상을 약속했다. 더불어 일정기간 연회비 면제와 결제문자서비스 무료, 금융명의보호 서비스 1년간 무료 제공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하지만 이미 신뢰를 져버린 금융기관의 서비스를 누가 마음 편히 또 다시 이용할 수 있을까?

유출피해자들은 이미 행동을 시작했다. 지난 20일 개인정보를 유출 당한 130명이 카드 3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신용카드사 정보유출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이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장을 제출했다. 소송 담당 변호사는 "외부해커의 의한 소행이 아니라 내부 보안 허술로 인한 유출이기 때문에 승소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에 힘입어 앞으로 유출피해자들의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유출상황을 지켜만 보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린 지 오래다. 적극적으로 피해를 벗어나려 힘쓰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이제 더는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사태를 빠져나갈 수 없다. 책임 있는 자세로 피해규모를 확산을 방지하고 이미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터지는 개인정보유출과 관련해 이제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 매번 터지는 금융사고에 책임자만 문책하고 공개적인 자리에 나와 고개 한 번 숙이는 사과로 끝날 문제가 더는 아닌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유출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먼저 개인정보가 유통되어온 관행을 끊어야 고객정보 유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사고파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강력하게 처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은행, 카드사 등이 공동 출자한 신용정보회사인 KCB의 위상과 관리체계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본래 독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관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금융사와 KCB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돼 있는 상황으로, 향후 법적으로 공공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거나 상시 감독을 실시하는 등 감독체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윤리의식을 저버린 내부자가 저지른 범죄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보안체계나 보안윤리 교육을 포함해 금융사가 미흡했던 보안조치를 강화할 수 있도록 감독당국이 강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국민들은 마음 편히 누군가를 믿고 싶다. '신뢰'와 '믿음'을 가장 중요 시 해야 할 금융기관에서 절대 발생하지 말아야 할 정보유출이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책임 있는 자세로 사태를 수습하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 국민들이 마음 편히 금융기관을 믿을 수 있게 힘써야 한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한 내실 있는 대책을 기대한다.

김정훈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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