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5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 해소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공항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최근 전기차 하면, IRA가 가장 핫이슈다. IRA는 ‘Inflation Reduction Act’의 약자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이다. 법안의 목적은 에너지와 의약품 물가를 잡겠다는 것이다. 즉, 기존 전통 에너지 외에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 에너지 구도를 다각화하면 지구 온난화 등의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석유나 가스 등 기존 에너지로 유발된 고물가까지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약품은 처방약 가격 인하를 통해 의료 복지를 실현하면서 국민들의 의료물가를 낮추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미국이 이러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대를 위해 7400억달러 약 910조원의 예산을 사용하겠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약 4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후변화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 2023년부터 전기차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 신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IRA의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사실상 미국에서 제조한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국내에서 100%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한국산 전기차에 불리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IRA 법 시행 요건은 다소 복잡하다. 이 세제혜택을 받으려면 기간이나 생산규모 등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기차 보조금 7500달러의 절반을 받으려면,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니켈·코발트 등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이 비율은 2024년 40%부터 시작해 2026년에는 80%까지 늘어난다. 또 나머지 절반의 보조금은 북미에서 제조되는 배터리의 주요 부품인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등의 부품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다. 이 비율은 2028년 100%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내년부터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이 조건대로 하면 현재 미국 내 72개 전기차 모델 중 70%는 보조금에서 탈락하게 된다. 대부분의 전기차가 완전한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특별히 국산 자동차에 불리할 것도 없다는 의견이 있다. 테슬라도 쿼터제에 묶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IRA 덕을 보는 차종은 포드 등 몇 개 회사의 10여종으로 국한될 수 있다. 결국 전체 시장이 위축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현대차는 현재 한국 내 완성차 형태로 수출 중이어서 현 시점에서는 보조금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이다. 조지아주는 아예 IRA법 연합전선을 구축해서 법 개정과 보완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산 전기차가 받게 될 불이익과 관련해서 조지아주의 정치인들이 잇달아 해당 법의 개정 또는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를 비롯해 라파엘 워녹, 존 오소프 상원의원, 버디 카터 연방하원의원 등은 당파를 초월해 IRA로 한국산 전기차가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IRA 시행으로 현대차의 전기차 매출에 타격을 받게 되면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없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IRA 법안을 보면 ‘현지 완성차 공장을 갖춘 車 기업만’이 혜택을 받기 때문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방미하는 등 빠른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2025년 생산 예정으로 추진 중이던 북미 전기차 공장에서 최대한 빨리 생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일단은 11월 중간 선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바이든 정부가 중간평가를 받는 시점에 앞서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법안을 발의한 것이고, 실제 IRA가 상원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도 찬반이 50대 50으로 팽팽히 맞섰기 때문에, 11월 이후 완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세부조항에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는지에 따라 상황이 급반전될 가능성이 있다. IRA가 근본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미국 내 전기차 산업기반 확대와 중국의 잠재적인 전기차 시장 지배력 견제에 목적이 있으나, 동맹국만 잡는 건 아닌지 우려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전기차 배터리 기업은 IRA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SK, 삼성 등 북미 생산거점을 확보한 국내기업의 경우 IRA 최대 수혜기업이 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수로 던진 IRA는 탈탄소와 풍력·태양광·배터리·그린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미국 내 생산 확대 등을 위해 3740억달러(약 502조 6000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가운데 풍력·태양광 부문 지원액은 300억달러(약 40조 3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른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조지아주에 1.7GW(기가와트) 규모의 모듈 공장을 운영 중인 한화솔루션이다. 기타 풍력발전용 타워 제작사 씨에스윈드도 미국에 공장이 있어 세액 공제로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현대에너지솔루션과 두산퓨얼셀 역시 수혜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기업이 모두 수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제조하는 중견기업이자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3위인 엘앤에프에 미국 양극재 공장 건설을 불허했다. 첨단 기술인 양극재 제조 기술에 대한 보안 조치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산업기술보호법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 핵심기술을 수출하거나 관련 회사가 인수·합병(M&A) 대상이 되면 산업부 장관에게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 예산으로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은 경우에도 장관 승인이 있어야 해외에 공장을 지을 수 있다. 에너지 밀도를 결정하는 니켈 함량을 80~90%까지 높인 하이니켈 양극재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필수적인 소재로 기술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IRA로 인해 국내 완성차, 부품 기업 등도 영향을 받게 된다. 법안에 따르면, 예컨대 2030년쯤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 등 관련 부품들의 북미 생산 비중이 80~100%가 돼야 한다. 현대차의 전기차 공장은 물론 반도체, 배터리 업체들은 모두 짐을 싸서 미국으로 떠나야 할 판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최근 마이크론·도요타·혼다 등이 새로운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그 이유가 양질의 미국 노동자들 덕분이라고 농담했지만, 한국의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만 해도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나 되는 점을 고려한다면 노동시장 및 산업 공동화로 생길 혼란은 상상 그 이상이다. 우리 기업이 IRA 정책 수혜를 위해서는 중국 의존도가 70~80%인 중간재 수입을 단기간에 줄여야 하는데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철저한 준비를 거쳐야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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